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래통합당이 4·15총선 참패 후 표류한 지 42일만에 김종인호로 갈아탔다. 27일 통합당 상임전국위원회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추인함에 따라 김 비대위원장의 말 한마디가 2020년대 대한민국 야당사를 새로 기록하게 됐다. 300만 통합당 당원과 통합당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의 어깨에는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존폐를 가름할 천근의 책임이 얹혀졌다. 80세라는 나이와는 무관한 듯 건강한 장년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김 비대위원장의 앞으로의 역할에 대도무문(大道無門)을 향하는 비장함까지 서려 있다.

지난 2012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 2016년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비상대책위원회대표를 맡아 박근혜와 문재인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선거의 신(神)이라는 유명세를 탄 김종인이다. 그런 그도 지난 4·15총선 때는 미래통합당의 1개월짜리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단기필마로 뛰었으나 ‘코로나19 사태’라는 이외의 복병에 부딪혀 선거 결과는 괴멸 수준으로 나락(奈落)했다. 그는 오는 2022년 대선에서의 명예회복을 위해 이번에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아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땅에 떨어진 당의 지지율(23%)을 끌어 올리며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갈지 그의 개혁방향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비대위원장의 첫 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 통합당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될 과제는 ‘인적쇄신’과 ‘정책쇄신’이다. 지난 총선 분석에서 많은 유권자들은 통합당을 ‘꼰대정당’, ‘수구정당’, ‘좀비정당’, 강남부자 정당’, ‘해체돼야 할 정당’ 등 비판적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 비대위원장이 인적 쇄신과 정책쇄신을 투 트랙으로 밀어붙일 경우 환골탈태한 당의 모습을 볼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 비대위원장이 당운영에서 독단적 ‘차르 리더쉽’을 발휘할 경우 통합당 지역당선자 84명 중 66%인 영남권 당선자(56명)들의 저항에 부딪히는 경우도 예상할 수가 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총선 당시 “통합당을 ‘유능한 야당’, ‘품격있고 실력 있는 정당’으로 바꿔 차기 정부를 책임질 만하게 만들어 놓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22일 열린 통합당 당선자 모임에서도 이에 화합하듯 “실용 대안 정당이 되겠다”는 결의문을 냈다. 이에 따라 정책노선도 과거에서 탈피 대대적인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김 비대위원장은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 시절 “사회주의 색채가 있다”란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강 정책에 ‘경제민주화’를 추가한 적이 있다. 경제민주화에 포함된 ‘재벌의 순환출자’ 문제로 당시 대통령 후보 박근혜와 충돌한 이야기를 최근 그의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밝히고 있다. 김 비대위원장의 지론은 “시대는 계속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에 시대 변화에 따른 국민의 정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비대위원장이 독일에서 경제학 공부를 한 탓으로 ‘독일 기독민주당’식 개혁을 따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독일 기민당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당수로 있는 당이다. 이 당은 보수우파임에도 저소득층 지원금 확대, 출산여성 연금확대 등 전향적인 정책을 공약으로 내 집권에 성공했다. 김 비대위원장도 최근 경제민주화를 거론하며 국가가 전 국민에게 매월 일정액을 월급처럼 주는 기본소득(basic income)제를 언급하고 있어 이 제도의 도입에 관심이 모아 지고 있다. 기본소득은 문재인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에서 한발 나아간 좌파정책으로 불린다.

그는 “이제는 보수, 보수하는 정당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당 혁신에 딴죽을 걸면 안 된다”고 자신의 당개혁에 미리 쇄기를 박았다. 그는 이날 비대위원 가운데 초선의 흙수저 출신 김미애(부산)를 비롯 30대 3명, 여성 2명 등 세대와 지역을 안배한 9명으로 구성했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선 후보자 선정은 ‘미스터 트롯’ 방식의 국민 경선제를 도입해 기존의 대선 주자들을 포함해 830세대, 40대 기수들을 총망라, 출전시켜 전국을 돌며 ‘녹다운’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역동적인 선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김 비대위원장이 어떤 메시지를 낼지도 주목거리다. ‘김종인’ 이름 석 자가 이 시대 정계 최고의 화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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