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우리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1950년대, 1960년대는 아이들 얼굴만 보아도 그 집의 가세를 알 수 있었다.

가난한 집 아이는 몰골이 볼품이 없다. 시골아이들이 더 심했다. 영양이 부족하고 목욕을 자주 하지 못해 머리에는 부스럼이나 기계충이 번졌다. 간혹 TV에 나오는 아프리카 빈민촌 아이들만큼은 아니라도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피었으며, 몸에 종기가 나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머리나 몸에는 이가 기생했고, 몸속에는 기생충이 누구에게나 있을 정도였다.

보릿고개 그 어려운 시절에 인체에 붙어 뜯어먹는 기생충이 그리도 많았던지.

1년에 한두 번씩 채변봉투를 학교에 가져다 내었다. 아니 내가 교직생활을 하면서 1980년대까지 채변봉투를 받은 기억이 난다. 기생충 검사가 연례행사였다. 초등학교(국민학교)시절에는 기생충검사 결과 회충약 산토닌을 나누어 주었다. 거의 전 학생이 해당되었다.

나중에는 뱃속에서 녹아 지는 약이 나왔지만 약을 먹고 나면 회충이 그대로 변과 함께 나왔다. 살아서 꿈지럭거리는 지렁이 같은 회충. 징그러웠다. 약을 먹기 싫어서 먹었다고 거짓말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선생님이 지켜보는 데서 먹도록 했고, 다음 날 회충의 마릿수까지 조사하기도 했다.

비료가 귀했던 시절 채소에 인분을 주고 가꾸어서 그런지 시골학생 대부분 회충과 촌충이 있었다. 뱃속에 기생충을 많이 가지고 있는 어린이는 얼굴색이 노랬다. 횟배앓이를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보릿고개’ 노래는 구성지게 잘도 꺾여 넘어가더라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지난 2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영화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최우수작품상 등 4관왕의 쾌거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수상한 트로피가 148개나 된다고 한다. 한국영화 역사상 큰 족적을 남겼다.

영화의 제목이 ‘기생충’이다. 자본주의 삶 속에서 자본을 지닌 ‘숙주’와 그 숙주로부터 뜯어 먹고 살려는 ‘기생충’의 이야기인 것 같다.

지하 벙커, 반 지하방, 많은 계단들이 사회적 계층을 나타내고 있으며, 기생충이 더 하층 기생충을 핍박하는 부조리. 영화의 줄거리는 차치하고 자본주의적 모순이 낳은 기생적인 삶의 모습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삶과 숙주로서의 삶, 기생충적인 삶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꿀벌의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3분의 1은 열심히 일하고, 3분의 1은 적당히 놀면서 일하고, 3분의 1은 빈둥거리면서 놀고먹는다고 한다.

여기서 열심히 일하는 벌들만 모아놓거나, 노는 벌만 따로 모아두어도 마찬가지로 3분의 1은 열심히 일하고, 3분의 1은 노는 벌이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집단으로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조에서는 기생해서 먹고 사는 부류가 저절로 생기는 모양이다. 다만 인간사회처럼 구조적으로 계층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기생충 말고 ‘대충’이란 충이 있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대충이다.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 유지도 대충, 생각도 대충. 이런 대충이 코로나19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 스스로 방역 담당자가 되고 면역주치의가 되어야 한다.

대충이 대형화재, 대형선박사고, 대형 산불 등의 대형 참사를 가져오고, 국방의 허술함도 가져온다. ‘대충’을 무서워하자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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