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다시 말해서 재생산될 수 있고 따라서 파괴될 수 있는 상품으로, 대수롭지 않은 수량으로, 물화된 실체로 만들어버릴 때, 우리는 여전히 인간일 수 있을까? 우리는 시효로 소멸되지 않는 반인도적 범죄의 상속인이다.” 프랑스의 퀼튀르 방송 전 국장 로르 아들러가 쓴 프랑스 철학자 들라캉파뉴의 책 ‘인종차별의 역사’ 추천사 중의 한 부분이다.

최근 일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이사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국회의원에 대해 두 차례 기자회견을 가진 뒤 할머니에 대한 폭력적 언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정의연과 윤 의원를 둘러싼 기부금 모금과 사용 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이 할머니에게 일부 극렬분자들이 언어적 린치에 가까운 인신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를 보면서 아들러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결코 소멸되지 않는 반인도적 범죄의 상속자’라는 자괴감이 든다.

이 할머니가 대구에서 첫 기자회견을 한 지난달 27일부터 현재까지 관련 기사나 SNS 등 온라인상에는 “치매다”, “노망이 났다”에서부터 “대구 할매”, “참 대구스럽다” 등 개인 비하는 물론 지역 폄하발언까지 나돌고 있다. 이런 심각한 차별적 발언의 행렬에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과 유명인도 가세했다.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전 대표는 “할머니의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변영주 감독은 “그 할머니는 원래 그런 분. 당신들의 친할머니도 맨날 이랬다저랬다, 섭섭하다 화났다 하시잖아요”라고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고 있는 김어준은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면 이 할머니가 쓴 게 아닌 게 명백해 보인다. 냄새가 난다. 누군가 왜곡에 관여하는 게 아니냐”라는 배후설을 퍼뜨렸다.

또 2차 기자회견 이후 각종 SNS에는 “구순이 넘은 나이에 노욕이 발동했다”, “자기는 국회의원 못하고 죽게 생겼는데, 새파랗게 어린 게 국회의원 한다는 게 싫었나 보다” 등의 조롱과 비난의 글이 올라왔다. 심지어는 이 할머니를 ‘토착왜구’라고 까지 한다. 익명성의 어둠에 숨어서 ‘이들이 과연 인간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의 토사물(吐瀉物)을 내뱉고 있다.

이들은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려 반인륜적 인권 말살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증언한 이 할머니의 활동을 완전히 왜곡하려 하고 있다. 윤 의원이 각 종 의혹에 대해 이렇다 할 근거 자료도 내 놓지 않은 채 이 할머니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숱한 의혹들이 이들의 선동과 여론전에 묻히지 않을 지 우려된다. 진보의 인권과 정의가 이런 것인지 되묻고 싶다. 조롱과 비하로 불의를 덮을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반인륜적 범죄의 공동 상속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이들의 부당한 인신공격을 중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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