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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설] 뿌리 깊은 흑백 갈등
[삼촌설] 뿌리 깊은 흑백 갈등
  •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 승인 2020년 06월 02일 16시 2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6월 03일 수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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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노예제도와 흑인노예무역이 소멸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됐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에야 헌법으로 노예제가 폐지됐다. 흑인들에게 정치적 평등을 인정하지만 실제는 전혀 달랐다. 당시 해방된 노예 10명 중 9명이 살던 남부의 주들에는 ‘평등하지만 분리된다’는 원칙의 인종분리 법규들이 시행됐다.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상호 동일한 편의를 누리기 위해 백인과 흑인이 서로 다른 객차를 타고 여행하도록 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흑백분리로 사실상 흑인들은 학교에 가고, 직장을 얻는 등 기본적인 권리들을 정상적으로 행사할 수 없었다.

미국 흑인들은 큐 클럭스 클랜(Ku Klux Klan·KKK) 같은 조직의 집단 폭행과 인종차별적 폭동을 겪는다. 1919년 여름에는 시카고에서 40명의 사망자와 5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온 폭동이 일어난다. 이 같은 폭동은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수십 건에 이른다.

미국에서 1954년에야 흑백분리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 이후 마틴 루터킹 목사 등의 주도로 흑인 ‘시민권’ 쟁취 운동이 전개된다. 흑인이 선거권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1965년의 ‘투표권법’이 제정되고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하지만 흑인 대통령까지 배출한 미국에서 흑백 갈등은 지금도 여전하다. 1992년 백인 경찰이 흑인을 구타해 일어난 ‘로드니킹 사건’으로 촉발된 LA폭동, 2013년 백인 자경단 조지 지머먼이 후드티를 입은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과 몸싸움을 벌이다 총으로 살해한 이후 일어난 대규모 시위 등 크고 작은 흑백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했다. 경찰의 무릎 밑에 깔린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경찰의 진압은 8∼9분여간 지속 됐다. 결국 플로이드는 사망했다. 이후 미국 전역은 물론 해외에서까지 항의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프트 파워는 급격히 고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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