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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I Love 미술] 대구미술의 로맨티시스트, 이묘춘
[김진혁의 I Love 미술] 대구미술의 로맨티시스트, 이묘춘
  •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 승인 2020년 06월 03일 16시 28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6월 04일 목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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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유월은 여름의 시작이다. 대구의 여름은 남부지방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많은 예술가들이 세상에 나왔다가 사라졌다. 그 중 열정이 가득하고 인간미 넘치는 이묘춘(1942~1997) 미술가가 생각난다. 대구MBC 문화방송국에 근무하였다. 미술부장 이었다. 1965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신인예술상전에 장려상을 받았다. 1974년 한국실험작가전과 현대미술 4인전에 참가하였고 80년 프랑스 파리국립방송국 초대 스테이지 미술연수도 하였다.

대구에 자리 잡고 제 1회 대구현대미술제와 기타 그룹전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모습이 개성 있고 의로운 바이킹 해적선장의 이미지가 강하여 별명으로 불렸다. 거의 매일 독한 소주를 마시는 화가로 더 유명하다. 작업의 세계는 추상에서부터 구상 및 사실주의를 포함하는 폭 넓은 주제를 보여주었다. 명덕로터리 부근 남구보건소 옆 건물 지하공간에서 몇 년 동안 작업실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그 시절 가끔씩 이묘춘 작가를 만나러 이곳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어두운 지하화실에서 장발에 키가 크신 이 선생은 보통사람들이 커피나 음료수를 권하는 대신에 소주 한 박스에서 한 병을 꺼내 주시며 마시라고 권하였다. 그것도 안주는 거의 없이… 가끔 새우깡이나 마른 멸치 몇 마리가 전부였다. 시내에서는 단골 행복식당이나 선술집에서 소주를 자주 마셔서 거의 신선과 같은 주선이셨다. 술을 많이 마셔도 술주정 없이 마음씨 너그럽고 후한 아저씨처럼 관대하여 많은 예술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여름날 대구현대미술제가 열리는 시기에 큰 눈망울에 미소를 띠며 낭만의 모습과 정을 보여 주었다. 1970~1980년대 대구MBC 한 모 사장님도 그의 주벽을 인정하여 직장의 근무시간에 지장만 없으면 예술가적 낭만의 기질을 인정하였다.

이묘춘作, 공허의 계절 1985.

작년 봄 경기도 안성의 작업실에 거주하시는 원로 현대미술가 이강소 작가를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미술제 당시에 묘춘이가 그래도 인간미가 있었지, 그 친구는 의리가 있고 정이 많은 좋은 친구 였어…”라고 회고하셨다. 1990년 대 초쯤에 들었던 얘기로 이묘춘 작가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 대리 운전기사가 오지 않아 본인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역주행 방향으로 차를 몰았는지 많은 차들이 갈라지는 ‘초현실의 현상’을 경험했다고 했다. 픽션 인지 팩트 인지 모르겠으나 평소에 항상 알코올을 좋아하시는 것으로 보아 나는 사실로 믿고 싶다.

방송국 근무시간이 끝나면 대명동화실에서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주로 화폭의 배경에는 누드 상을 그리고 위에 수많은 파리떼들이 정액과 함께 가득 차 있는 독특한 주제의 화풍을 표현하였다. 낭만적 일상생활 속에서 알코올에 취한 날이 많은 그는 이것으로 인하여 병이 생겨 일찍이 생을 마감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지 지역의 화가들 사이에 애주가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전설의 인물로 등장되어 주선의 경지에 오른 작가로 각인되어 회자 된다. 아마도 하늘나라에서도 멸치나 새우깡에 소주 여러 병을 바라보고 흐뭇해하시는 이묘춘 선생이 그리워진다. 유독 파리라는 생명체를 주제로 삼은 것도 화가 자신의 또 다른 분신체가 되어 인간이 느끼지 못한 다른 차원의 초현실적 삶에 관한 스토리를 느끼고자 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의 말년에 대다수 작품의 제목들이 ‘공허의 계절’로 명명되어 있어 작가 내면의 허망하고 부질없던 시간과 현상세계를 보여준 것이라 여겨진다. 6월이 시작되는 초여름 날 그가 문뜩 생각나는 한 여름날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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