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 케인 변호사
하윤 케인 변호사

이탈리아의 모데나에서 태어난 엔초 페라리는 열 살 때 구경한 자동차 레이스에 완전히 매료되어 프로 드라이버의 꿈을 품고 유럽에서 최고의 레이서로 주목받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1929년, 엔초 페라리는 레이싱 경기 포뮬라 원에 출전할 팀을 직접 창설하고 이를 ‘스쿠데리아 페라리’라 명했는데, 이 레이싱 팀이 현재 자동차 회사 페라리의 전신이다. 노란 바탕 안에 뒷발로 서 있는 말은 페라리의 상징으로 모든 자동차에 표시된다. 이는 레이싱 팀 때부터 만들어진 페라리의 심볼이다. 희소성을 기반한 마케팅 전략으로 광고도 많이 하지 않지만, 페라리를 주문하려는 고객들은 언제나 넘쳐난다. 소유 자체가 스테이터스 심벌이 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에는 페라리 소유를 자랑하는 사진이 무수히 많다.

독일 디자이너 필립 플랑은 여러 패션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패션 기업가다. 그는 십 년 동안 네 대의 페라리를 구입했다고 할 만큼 페라리의 열렬한 팬이다. 2019년, 플랑은 자신이 디자인한 스니커즈를 본인이 소유한 초록 페라리 위에 올려두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페라리 심볼인 말 로고와 브랜드 이름 Ferrari와 함께 플랑의 브랜드명인 PLEIN이 모두 사진에 드러난다. 흰 바탕에 초록색 악센트가 들어간 신발과 초록색 페라리의 조화는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으며 순식간에 수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며칠 후, 플랑은 페라리 측 로펌으로 부터 경고장을 받게 된다. 플랑의 인스타그램 사진이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며 큰 손실을 입힌다는 주장이었다. 페라리는 48시간 내 사진을 내리지 않으면 곧바로 소송에 돌입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플랑이 페라리의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제품을 홍보했다고 본 것이다. 신발 홍보에 페라리를 이용한 것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플랑의 포스팅에는 플랑 소유의 페라리와 반나체의 모델이 파티를 하는 모습이 많은데,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보여지는 페라리의 이미지는 페라리가 추구하는 브랜드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는 것이 페라리의 주장이다. 페라리의 고급 이미지에 선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플랑은 페라리의 경고장을 협박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에게 플랑 브랜드 신발을 각자가 소유한 럭셔리 자동차 위에 올려두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표현의 자유 문제로 화제를 전환하려는 전략이었다. 인터넷에는 ‘내 돈 주고 산 물건을 내 맘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는 내용으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플랑이 초록색으로 ‘깔맞춤’을 한 사진을 사용한 사실, 많은 부분 중 페라리의 로고가 들어간 부분을 찍은 사실 등 그의 사진은 고의성이 보임을 부인할 수 없다. 페라리는 자동차 말고 다양한 분야에서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데, 신발도 그중 하나다. 페라리는 푸마와 함께 신발 제품을 출시하거나 토즈와 드라이빙 슈즈를 내놓고 있으며, 따라서 플랑이 신발 사진을 올린 것이 소비자에게 플랑의 신발이 플랑과 페라리가 합작한 신발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것도 페라리에 유리한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플랑은 문제가 된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팔찌 판매를 하며 롤렉스와 팔찌를 함께 착용한 사진을 올리거나, 이어폰을 팔며 애플 핸드폰을 함께 찍어 올리는 것은 해당 제품이 모두 내 소유여도 문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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