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원, 피앤알 압류명령 결정 '공시송달'…8월 4일 효력 발생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전경.

일본 전범 기업을 대상으로 한국 법원의 압류결정문 ‘공시송달’을 최근 결정,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가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3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따르면 포스코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의 합작회사인 피앤알(PNR)에 대한 압류명령 결정 등의 공시송달을 지난 1일 결정했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불응하는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현행법 상 공시송달 후 60일이 지나면 당사자에게 문서가 전달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송달의 효력은 오는 8월 4일 0시부터 발생한다고 법원 측은 설명했다.

이때부터 일본제철이 소유한 PNR 주식을 강제로 매각해 현금화하라고 명령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법원 측은 “해당 강제집행절차와 관련, 현재 주식회사 PNR 주식에 대한 감정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감정을 거쳐 (현금화) 결정 여부가 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강제징용 피해자 대리인단 측은 “법원과 감정인의 신속한 절차 진행과 제3 채무자인 주식회사 PNR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뤄져 부디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들이 이 절차에서 온전히 권리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압류사건은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 측에서 제기한 것이다.

당시 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채권을 근거로 PNR의 주식 8만1075주에 대해 압류 결정을 했다.

주식의 가치는 액면가 5000원을 기준으로 4억537만5000원이다.

포항지원은 이 사건 외에도 다른 피해자들이 동일한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유사한 강제집행 사건이 두 건 더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 3개 사건을 통틀어 압류명령 결정이 내려진 PNR 주식은 총 19만4794주다.

법원은 이 결정을 일본제철에 송달하는 절차를 시작했으나, 지난해 일본 외무성은 해외송달요청서를 수령하고도 아무런 설명 없이 관련 서류를 반송됐다.

법원은 재차 송달 절차를 진행했지만, 일본은 1년 가량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본은 현금화 실행 시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4일 회견에서 현금화 문제와 관련, “일본 기업의 경제 활동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도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계속 의연하게 대응하고 싶다”고 했다.

일본 언론 등에선 한국산 제품 관세 인상 등의 조처가 있을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선 한국과 일본이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하지만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어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강제 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으며, 따라서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징용 배상판결은 청구권협정에 위배되며 곧 ‘국제법 위반’이라는 게 일본 정부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본 인식하에 한국은 ‘사법부 판결이 존중돼야 한다’고, 일본은 ‘일본 기업에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양국이 모두 만족할만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이 지난해 6월 이른바 ‘1+1’(한일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위자료 지급)안을 제안했지만, 일본이 거부한 뒤 이렇다 할 대안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한일 양국이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느라 강제징용 해법 찾기를 사실상 중단한 분위기다.

더구나 최근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취소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일본이 수출규제 철회에 미온적으로 나오자 정부는 지난 2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재개로 맞섰다.

정부는 지난해 꺼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다시 검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법원이 공시송달의 효력이 발생하는 8월 4일이 지난 뒤 곧바로 현금화 작업에 착수할지는 불투명하다.

공시 송달 결정 이후 채무자 심문, 심문서 송달, 매각 명령 등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남아 있다. 여기에다 피고 측의 항고, 재항고 가능성도 있어 현금화 시점에는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일각에선 법원도 한일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현금화 명령을 내리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는 일러야 연말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실질적 현금화 조치에는 올해 안에 이뤄지기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면서 “한일 양국이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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