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 핀 나리꽃은 얼마나 아찔한 목소리인지

휘파람에 허밍이 얹혀 오는 아침
너무 오래 미워하면 너무 오래 사랑하게 된다
깨지기 쉬운 심장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나비의 잠을 보고 온 날은 너무 빨리 늙어 버린 것 같아서

원왕생 원왕생
한 계절 앞서 달리는 편백나무 숲에서
그럴 사람 있다 사뢰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 걸 생각하면 나를 잃어버려서
아무리 애써도 알 수 없는 것들
오다가 주웠어 그런 모서리에 기댄 밤

눈썹은 언제 다 자라서 바다를 가질까

* 「원왕생가」 중 “원왕생 원왕생/그릴 사람 있다고 사뢰소서”.


<감상> 간절히 그리워하면 바다에 서게 되고, 바다가 나의 심장으로 비춰지는 것인가. 그리운 이를 향한 애증은 오랜 세월로 풍화되었으나, 그리운 이가 있었다고 숲에서 아뢰고 싶다. 때론 너무 사랑하여 많은 걸 잃어버렸어도, 알 수 없는 소중한 것들 손에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그리운 이의 부재가 눈썹으로 새겨지고, 눈썹은 바다의 길로 확장되고, 눈썹에 그리운 이의 환영이 남게 된다. 결국 눈썹과 연관된 길은 하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지고 만다. 바로 꿈꾸는 눈동자만이 사랑하는 이를 마중할 수 있고, 맑고 찰랑대는 바다를 담아낼 수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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