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얼마 전까지는 어린이 글짓기 대회 출제와 심사를 자주 했습니다. 원로교수가 되고부터는 그런 자리를 아예 사양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교수 정년이 좀 깁니다) 본의 아니게 좌중을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선후배나 사제 관계로 인연이 닿은 분들과 함께 자리를 해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불편한 자리입니다(제가 또 개성이 좀 강합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어린이 대상 외부 출제와 심사를 일체 마다하고 일반인 대상의 외부 강연만 한 번씩 나갑니다. 며칠 전 계모임에 나갔더니 친구들이 새로운 도전을 권했습니다. “페이스북에 싣는 글들을 가지고 유튜브 방송을 한번 해 보면 재밌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라 겉으로는 “늙은이가 무슨 주책이냐?”라고 대답했지만 귀가 솔깃했습니다. 이제 퇴직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 몸이 멀쩡해서 무언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각종 국어(언어) 시험 쉽게 푸는 법’ 같은 것을 100강(講) 쯤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수학능력시험이나 leet(법학적성시험), psat(공직적격성평가) 같은 데에서 문해력 평가를 다양하고 심도 있게 하는 추세입니다. 좋은 대학에 가거나 법조인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혼자서 척척 알아서 통과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많은 시간과 정열을 기울여 이 시험들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고액을 들여 통째로(지필, 논술, 면접) 과외나 학원 수강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수험생들을 위해서 제가 알고 있는 약간의 실용지식을 무료로 나누어주는 것도 노후의 일로 보람과 의미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틈틈이 준비해서 장비도 갖추고 학습안도 만들어서 내년부터 바로 실행에 옮길까 합니다. 친구들의 권유인 ‘인문학 강의’는 ‘행유여력(行有餘力)’일 때 ‘글쓰기 인문학’ 강의와 함께(어제 글쓰기 인문학1권과 2권을 동시에 출판하자는 한 출판사의 제의를 받았습니다) 간헐적으로(일주일에 한 번씩) 해 볼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 그게 ‘전체를 보는’ 순서 관념일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 사랑할 시간이 그닥 많지 않으니까요.

생각이 그렇게 흐르면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화두가 줄곧 저의 뇌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유클리드가 당시 이집트의 지배자였던 톨레미 왕에게 한 말이라고 전해집니다)라는 말을 본받아 “읽기에는 왕도가 없다”를 줄곧 강조해야 할지(많이 읽고 많이 풀자!) 아니면 거꾸로 쳐들어가서 “중요한 것은 항상 애매하다. 애매한 것은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집중하자!”라고 해야 할지 좌면우고 전전반측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체를 보는 눈을 기르자!’는 요지부동입니다. 본디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맥락 파악’입니다. 맥락을 알아야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텍스트를 읽을 때 코드(단어의 뜻, 수사법, 구문의 용례(用例) 등)를 살피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맥락 파악의 전단계가 코드(code) 점검입니다. 결국 읽기는 코드와 맥락을 아는 일인 것이지요. 코드를 알아야 맥락이 파악되고 맥락을 알아야 코드의 현재 의미가 결정됩니다(오늘의 코드와 맥락은 내일의 오해와 편견입니다). 결국 ‘전체를 보는 시각’ 아래서만 작동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맥락 파악’은 천차만별입니다. 하나를 듣고 열을 깨치는 사람도 있고 하나만 보면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맥락 파악 문제는 출제되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 “일부(一部)를 가지고 전체를 유추하지 말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일은 천재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천재를 골라내기 위해서 수능이나 leet나 psat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약하자면, 중요한 것은 무시하되, 전체를 보고, 전체를 보되 일부를 가지고 텍스트의 전체 의미를 속단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상이 저의 교육철학(1)- ‘전체를 보는 눈’입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