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일보 임원실 로비 벽에는 특별한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영일만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그린 수묵화다. 이 그림은 1990년 경북일보 창간을 축하해 그린 지홍(智弘) 박봉수(朴奉洙·1916~1991) 화백의 작품이다. 지홍 선생 말년작으로 어둠을 걷어내며 동해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그려 불의를 지우고 세상을 밝히라는 뜻을 담았다.

구상 시인은 1951년 지홍과의 첫 만남에 대한 인상을 “회화의 명인이 있다고 해 가보니 불상이 걸린 벽과 밑그림이 쌓인 방안에서 마치 반가사유상 같이 비쩍 마른 사람이 그 반가사유상처럼 앉아 있었다. 불교미술에는 화선불이(畵禪不二)라는 말이 있는데 그림과 수도 참선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한국 전체 현대 예술가 중에서 가장 화선불이의 삶을 살고 화선일미(畵禪一味)의 경지를 이룬 이가 바로 지홍 박봉수다.”라 했다.

수묵 반가상 등 불교적인 소재의 그림을 많이 그린 지홍은 구도적이고 선적(禪的)인 화풍을 추구했다. 지홍은 신라의 고도 경주의 사정동 국당마을에서 태어났다. 지홍의 작품 가운데는 흰 눈에 반쯤 덮인 석불(石佛)을 그린 ‘설불(雪佛)’과 가톨릭 개종 이후 수묵의 단순한 필선으로 예수의 얼굴을 그린 ‘명상 그리스도’는 그의 작품 가운데 쌍벽을 이루는 명작이다.

지홍은 우리나라 수묵추상과 문자추상의 선구적 위치에 있다. 지홍은 서구 추상미술을 단순 모방한 것이 아니라 불교의 선(禪)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 추상실험의 결과물이어서 더욱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지홍은 수묵과 수채, 유화 등 다양한 기법을 모두 구사했고,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화풍의 소유자였다.

지홍 회고전 ‘구도의 흔적’이 10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소공동 금산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회고전에는 대표작 ‘명상 그리스도’, ‘금장천과의 대화’를 비롯해 마지(麻紙)에 수묵으로 그린 ‘반가상’과 화선지에 담채로 그린 ‘고문자도’, 종이에 혼합재료를 사용한 ‘콜라주’ 등 34점이 전시된다. 지난 2014년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이후 오랜만에 열리는 지홍 작품전이다. 서울 나들이를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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