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앙칼진 독설과 겁박에 문재인 정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비위 맞추기에 정신줄을 쏟고 있다. 북한에 전단을 살포한 탈북민 단체에 눈을 부라리며 사법당국에 고발 조치까지 했다. 김여정이 지난 4일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한 담화에서 “전단 살포를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 “동족에 대한 적의가 골수에 차 있다”는 등의 적대감을 문재인 정부에 쏟아 부었다.

김여정의 입이 갈수록 거칠어지며 ‘남조선 군기 잡기’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과 국민이 북한 집단에 이런 능멸 조롱당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의 김여정 발언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가 우리 국민을 더욱 절망케 한다. 김여정이 탈북자들을 향해 ‘망나니’, ‘똥개’, ‘인간쓰레기’ 등 갖은 막말을 쏟아내더니 문재인 정부와의 모든 소통 채널을 9일 자로 차단해 버리고 대남사업을 ‘대적(對敵) 사업’으로 전환하고 앞으로 한국을 ‘적’으로 상대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날 김여정은 대남 담화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각오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단금지) 법이라도 만들라”고 문 정부에 닦달을 했다. 김여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는 놈이 더 밉더라”고 했다. 여기서 ‘못 본 척하는 놈’이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여정의 패악(悖惡)에 가까운 이 담화가 있은 지 4시간 반 만에 더 놀라운 일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잇따라 벌어졌다. 통일부가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대북 전단 중단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김여정의 ‘법 만들라’는 지시를 곧바로 이행한 것이나 다름없다. 통일부의 이 발표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청와대서도 “대북 전단은 백해무익한 안보 위해(危害)행위”라며 “앞으로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탈북민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인권 운동 차원에서 날리는 대북 전단을 ‘안보 위해 행위’라고 못 박았다.

통일부 발표 4시간 뒤 국방부도 질세라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접경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로서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어찌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재빠르게 화답하는 모습을 보일까. 청와대가 전단 살포를 ‘안보위해’라고 규정하자 통일부가 엊그제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 씨와 큰샘 대표 박정오 씨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하고 두 단체의 설립허가를 취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전단살포가 안보위해라면 지난해 11월 북한군이 우리 서북 5도에 인접한 창린도 방어기지에서 해안포 사격을 실시하고 이 사실을 공개한 북한의 행위가 남북군사합의 위반임에도 우리 정부는 규탄 성명 하나 내지 않았다. 이것뿐인가. 지난달 북한이 순항미사일을 여러 발 발사하고 전투기까지 동원한 도발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쳤지만 유감 표명 등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또 지난달 북한군이 우리군 GP에 고사총을 발사했을 때도 서둘러 ‘우발적인 사고’일 가능성이 많다고 북한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런 안보위해에 대해선 항변 한마디 없는가.

이렇듯 북한의 각종 도발에는 뒷짐을 지던 정부가 김여정 한마디에 탈북민 등 우리 민간단체의 활동을 눈엣가시처럼 대하는 태도를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북한 미사일 총탄보다 탈북자 풍선 전단이 더 위험한 것인가. 김씨 일가가 전단살포에 민감한 이유는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열게 하는 ‘진실’이 전단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북은 노무현 정부 때도 ‘개성공단 중단’을 협박하며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았다. 당시에도 전단금지법이 검토됐으나 표현의 자유 같은 헌법 가치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이제 북한이 남북 4개 통신선을 차단해 버리는 벼랑 끝 전술로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김여정에게 ‘읍소’라도 더 하라는 협박처럼 보인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대북 저자세에서 벗어나 강경한 안보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 북에서 한쪽 뺨을 때리니 다른 뺨을 내어놓지 말고 우리도 힘껏 북한의 뺨을 때려야 한다. 그것만이 5000만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안보길’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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