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백년을 엎드려 누워있어도 온화한 부처님의 미소에 감탄

열암곡석불좌상과 엎어진 채로 발견된 마애불상의 보호시설이 지근에 위치해 있다.

경주 남산은 신라천년의 역사를 지닌 채 찬란했던 신라 불교문화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경주평야를 둘러싼 산들 중에 가장 크고 높은 산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1968년 12월 31일)되어 여러 갈래의 탐방로가 나 있고 최고봉인 494m의 고위봉(高位峰)과 468m의 금오봉(金鰲峰)등 많은 산에서 흘러내린 40여 계곡이 함께 하는 산으로써 ‘불국정토(佛國靜土)’라 할 만큼 불교유적이 많은 이곳에 절터 112곳과 탑 61기, 불상 80채가 현재까지 존재한다고 알려진 옛 신라인들의 불교유산이 늘려 있는 곳이다.

남산의 크기는 남북으로 8㎞, 동서로 4㎞ 산 전체의 형태가 고구마처럼 길쭉하게 생겼으며 화강암으로 이뤄진 암릉과 바위들이 소나무와 조화를 이뤄 신라 도읍지 서라벌을 더욱 빛낸 아름다운 명산(名山)이다.

여러 갈래 탐방로 중 지난 4월과 5월 주말을 이용해 가 본 고위봉(494m)일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남산은 오랫동안 여러 루트로 다녀 본 터라 거의 안 가본 데가 없었는데 최근 ‘경주남산 보물지도’라는 안내 팸플릿을 보다 가보지 못한 코스가 있어 내자와 둘이서 떠났다. 고위봉도 여러 번 올랐지만 새갓골에서 오르는 산행을 한 적이 없었고 더욱이 ‘열암곡석불좌상’과 지난 2007년 발견되어 ‘5㎝의 기적’이란 화제를 불러일으킨 ‘엎어진 채로 누워 있는 마애불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 흥미를 더한다.

열암곡석불좌상의 반듯한 모습이 불심을 자아내게 한다.

포항에서 1시간여를 달려 경주시 내남면 노곡2리에 있는 새갓골주차장에 차를 대고 ‘열암곡석불좌상’ 가는 길로 접어든다. 800m 전방에 위치한다는 표지판을 보고 한달음에 오를 것 같았지만 그리 녹록지않은 산길이다. 가파른 숲길을 따라 인적이 없는 길을 가쁜 숨을 내쉬며 30여분을 오르니 ‘열암곡석불좌상’이라는 자그마한 표지판이 오른쪽을 가리킨다. 따사로운 4월 막바지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다소곳이 앉은 석불이 반갑게 맞아준다. 새롭게 주변을 다듬어 석불이 위치한 곳이 평평하고 석축이 가지런히 쌓아져 정리가 잘되어 있다.

열암곡마애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씌운 시설을 볼수 있다.

2005년부터 흩어진 불두(佛頭 : 부처님 머리 부분)와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불상의 신성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뒤에서 빛나게 하는 의장) 등을 발굴하여 복원하였으며 그 후(2007년) 석불좌상을 보수,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엎어진 채로 누워있는 마애불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현재는 무게가 70톤이 넘고 전체 길이가 6.2m나 되는 엄청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차양막을 치고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는 터라 그나마 조그맣게 열어둔 틈으로 불상의 오뚝한 콧날과 입술 등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엎어진 채로 발견된 열암곡마애불상의 얼굴을 근접 촬영한 부분.

발견 당시 지면과 불과 5cm간격으로 얼굴 면이 맞닿아 있어 ‘5cm의 기적’이라는 말과 함께 남산에 산재한 불상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 되어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언제쯤 그 웅장하고 온화한 마애불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 다시금 들여다본다.

석불좌상과 마애불상을 보느라 넋이 나가 봉수대쪽으로 오르는 편안한 산행로를 벗어나 암릉으로 가는 가파른 길을 오른다. 땀을 흘리며 길도 아닌 데를 무작정 올라보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바위능선 가장자리에 닿았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울산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고 멋지게 비틀린 소나무 등걸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선다. 연분홍 산철쭉의 향내를 맡으며 바위 턱에 앉아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무상무념의 휴식을 취한다. 마침 젊은 부부가 올라와 말을 건다. 이곳은 탐방로가 아니며 조금 더 가면 편한 길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만난 김에 사진촬영을 부탁하고 모처럼 내자와 포즈를 취해본다. 공교롭게도 우리부부가 가정을 이룬지 만 40년 되는 하루 전이라 감회가 새롭고 남달라 웃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알려준 준 쪽으로 나서니 정상탐방로가 나오고 얼마 오르지 않아 봉수대(烽燧臺)가 바로 앞이다.

봉수대의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고 축대로 쓰였던 석축이 어렴풋이 남아 있고 큼지막한 안내판이 놓여 있어 이곳이 조선시대 위급을 알리는 통신수단으로 사용됐던 봉수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위봉 산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다시 탐방로를 따라 새갓골 주차장으로 하산한다.

산행 들머리인 새갓골 주차장에 세워진 표지판.

5월 연휴가 지나고도 좀체 시간을 내지 못하다 주변 몇 분과 5월 23일 새갓골을 다시 찾았다. 그새 산색이 더욱 짙어지고 푸르름이 더한 초여름의 산속을 간다. ‘엎어진 채 누워있는 마애불상’ 탐방 얘기에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따라나선 일행들이 감탄을 한다. 말로만 듣던 엎어진 채로 온화한 미소 그대로 몇백 년을 견뎌 내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의 설명으로는 400여 년 전 경주의 대지진(6·4)으로 쓰러졌다고 하는 마애불상이 일어나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주기를 기원드리며 봉수대로 오른다. 몇 주 전에 활짝 피었던 연분홍 산철쭉(연달래)은 지고 푸른 잎사귀 사이로 산새들의 지저귐만 귀를 즐겁게 한다. 봉수대 부근 시원한 곳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마음의 점(点心)(?)을 찍고 한낮의 풍요를 즐기며 한때를 보내다 다시 산행에 나선다. 고위봉으로 가는 길에 우뚝 솟은 암릉 위에 올라 남산의 기(氣)를 듬뿍 마시며 일대의 파노라마를 가슴에 담는다.

봉수대를 지나는 능선에서 바라 본 칠불암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우측 아래 칠불암(七佛庵)이 지척에 보이고 좌측 높은 봉우리 고위봉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솔숲과 활엽수가 혼재한 산길을 오르내리니 칠불암과 금오봉 쪽으로 갈림길이 나오고 고위봉 직전에 있는 백운재에 닿았다.

‘정상을 그저 내주는 산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고는 있지만 역시나 고달픈 발품을 팔아 고위봉 정상에 오른다. 평평한 산정에 정상표지석만 덩그렇게 서 있는 고위봉(494m)은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이 별로다.

고위봉 오르는 길은 백운재에서 오르는 코스가 가장 쉬운 길이고 용장골에서 이무기능선으로 오르는 코스는 험한 암릉이라 초보자들에겐 권하고 싶지 않은 길이지만 아기자기하고 스릴 넘치는 코스가 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용(龍)이 되고자 몸부림치는 이무기를 닮았다 하여 ‘이무기능선’이라 불리는 이 능선 산행이 남산 일대에서는 가장 다이나믹한 등반길이다.

경주 남산의 산행코스가 여럿 있지만 대표적으로 북쪽 끝자락인 상서장(上書莊·최치원이 살던 집)에서 해목령·금오정을 거쳐 금오봉(468m)를 찍고 이영재와 백운재를 넘어 고위봉(494m)에 올라 남쪽 틈수골이나 백운골로 내려서는 남북종주가 가장 긴 코스이며 포석정, 삼릉, 용장골 등 서쪽 계곡에서 오르는 길과 통일전이나 국사골, 칠불암 쪽에서 오르는 동쪽 계곡 코스가 산꾼들이 많이 찾는 코스로써 국립공원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지정된 길로만 가면 그리 어려움 없이 남산 일대를 산행할 수 있어 인기가 많다.

다시 백운재로 내려와 백운암 가는 길로 접어든다. 이 길은 탐방객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산길이라 호젓하고 편안한 코스다.

백운재에서 백운암가는길에서 본 두꺼비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끈다.

내려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바위가 예사롭지 않다. 굽이친 노송 사이 암릉에 얼핏 보아도 큼지막한 두꺼비가 버티고 있는 형상이 눈을 의심케 한다. 이름을 지어 놓은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는 ‘두꺼비 바위’ 형상이다. 소나무 숲 사이 5월의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는 듯 미동도 없이 앉아 있어 한참을 살펴보아도 신기하기만 하다.

백운암 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급경사가 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오신 날’을 봉축하기 위해 달아놓은 연등이 없으면 절집이 있다고 여길 수 없는 곳에 백운암이 있다. 석축이 둘러쳐진 숲 속에 암자가 있어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가까스로 ‘백운암’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오르다 보니 자그마한 암자가 산객을 반긴다. 코로나 때문에 절 마당 입구에 손소독제가 놓여 있고 보살님들이 열감지까지 하신다. 적막한 산중 절집이 살벌(?)하다.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마당에 핀 꽃들을 감상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담벼락에 핀 흰 작약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고 파란 하늘에 매달린 봉축등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백운암이다. ‘K선(禪)’이란 단어가 낯설었지만 이곳 주지 스님이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선(禪) 문화를 전파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백운암에서 새갓골주차장까지 1.5㎞의 숲속 임도가 시원한 하산길을 만든다. 신라 천년 고도(古都) 경주의 유서 깊은 산, 남산(고위봉)과 온화한 미소로 살아있는 불상, 그리고 선(禪)의 경지를 깨우치게 하는 백운암의 향내가 아직도 그윽하게 남아있는 ‘걸어서 자연 속으로’ 떠난 ‘힐링 앤드 트레킹’ 일곱 번째 이야기를 여기서 접는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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