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바로 옆에 개인농장 창고가 떡하니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 소재 산남의진(山南義陣) 항일순국(抗日殉國) 무명삼의사총(無名三義士塚). 바로 옆에 개인 소유 농장 창고가 있어 답답한 형국이다. 손석호 기자

“의병들은 나라를 위해 뜨거운 피를 땅에 뿌렸지만, 그분들께 편히 쉴 온전한 자리도 마련해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13일 오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 1467-3번지 ‘산남의진(山南義陣) 항일순국(抗日殉國) 무명삼의사총(無名三義士塚)’을 찾았다.

‘포항의 독립운동사’와 상옥리 주민들에 따르면 이 무덤은 구한 말 1907년 12월 산남의진 2대 대장인 정환직 장군이 일본군에 체포된 곳 인근이다.

산남의진은 경북 영천·청송·영일(포항)·경주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항일 의병 부대다. 당시 우세한 일본군과 싸워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결국 우수한 무기와 치밀한 포위망을 갖춘 일본군에 대장은 이곳에서 체포됐다.

당시 의병 중 일부는 겁을 먹고 달아난 가운데 3명은 현장에 끝까지 남아 정환직 대장을 보호하기 위해 응사했지만, 결국 일본군 총칼에 즉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름을 남기지 못한 3명은 목과 사지가 찢겨 누구의 시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후 현장에 버려졌다.

왜군이 완전철수한 것을 확인한 마을 주민들이 눈을 피해 대충 사지와 목을 맞춰 그곳에 관은 물론 거적도 싸지 못한 채 3기의 묘로 묻어 주었다고 한다.

‘화적의 묘’라고 폄하되면서 가시덤불 등이 자라 방치되다, 1965년께 이를 보다 못한 상옥리 주민 손무호 씨 등이 매년 묘를 돌보기 시작했다.

1995년 마을 도로를 내면서 이장할 상황이 되자 당시엔 시유지인 수십m 근처 현 하천 부지 자리에 1기로 합장하고 작은비도 세웠다.

이장 당시에도 유골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까만 흙만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수년 후 무덤과 인근 부지가 개인 사유지로 불하(매각)돼 무덤 바로 옆에는 개인 농장 등이 지어졌다고 했다.

이날도 무명용사 무덤 바로 옆에 농장 창고가 자리하고 있어 매우 답답해 보였다.

포항 죽장면 상옥리 주민 손무호 옹이 산남의진(山南義陣) 항일순국(抗日殉國) 무명삼의사총(無名三義士塚)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손무호 씨는 방치됐던 무덤을 1965년께부터 당시 마을 청년들과 함께 벌초를 하고 돌보았다고 한다. 손석호 기자

손무호 씨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의병들이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뜨거운 피를 땅에 뿌리며 희생했지만, 이를 후세에 제대로 알리거나 대우도 못 해 드리고 있다”며 “보훈·행정 당국이 무덤 주위를 (매입해) 공원화한다면, 그분들이 편히 쉴 수도 있고 (주차장 활용도 가능해) 더욱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환직 대장의 동서(손수욱)의 친손자이기도 한 주민 손용익 씨는 “물질 문명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국가와 가정을 위한 ‘충과 효’ 등 정신 사상이 없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며 “한(恨)과 억울함을 안고 숨진 그분들부터 제대로 대우·위로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누가 다시 (국난이 생기면) 총을 들고 일어날까”라고 반문했다.

한편 매년 6월 1일 의병의 날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인 ‘홍의 장군’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정했다. 2010년 제정돼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가운데, 코로나19로 대부분 지자체에서 7월 이후로 연기해 기념 행사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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