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종갓집 손맛 그대로 지혜 담긴 토속 방식 고집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51호 최명희 명인

유구한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유서 깊은 고장 안동. 이곳에서 100년째 옛 종갓집에서 만들던 손맛 그대로의 방식으로 장을 담그는 장인기업이 있다.

장류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51호로 지정된 최명희(69·여) 명인이 이룬 안동제비원 전통식품이다.

손맛 맵기로 소문난 안동 김씨 계공랑파 종부인 시어머니 밑에서 집안 가풍과 매운 손맛을 전수 받은 최 명인은 지금도 옛 방식과 토속 재료만을 고집한다. 이러한 고집과 열정은 제비원전통식품을 연 매출 50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안동제비원 전통식품 전경

대한민국 명가명품 4년 연속 대상, 식품기술대상, 경북 중소기업 대상, 경북 우수 브랜드 선정 등을 보더라도 최 명인의 그동안 걸어온 길을 짐작할 수 있다. 전통의 손맛으로 생산되는 장류들은 특허등록 4건, 11개 식품 전통식품 품질인증을 마친 상태다. 현재 홈쇼핑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으며 경기도, 서울, 대구, 부산, 울산 등의 많은 학교에 제비원의 장들이 공급되고 있다.

24살에 안동 김씨 종갓집으로 시집 온 명인은 시어머니로부터 장 담는 법을 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큰 회사로 성장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은 아들 준영(45) 씨가 전수자로 대를 잇고 있다.

최명희 명인이 가마솥에 장작불로 콩을 삶고 있다.

명인은 안동에서 재배한 100% 국내산 백태만을 선별해 장을 만든다. 또 전통방식 그대로 무쇠가마솥에 장작불로 콩을 삶아 메주를 쑤고 말린다. 메주는 황토방에서 이불로 덮어 띄우고, 항아리 뚜껑을 매일 열고닫고를 반복해 1년6개월 이상 숙성시킨 후에야 세상에 나온다.

이러한 장인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메주 등 장류는 이미 경북 우수 장류, 안동시 특산품으로 지정된 건 물론 대형 백화점에 납품될 정도로 품질을 입증 받고 있다.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손맛을 그대로 전수 받은 최 대표는 1993년 대한민국 소두장(小豆醬) 식품명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름부터 생소한‘소두장’은 팥을 넣어 만든 별미장 중 하나다. 콩을 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장과는 달리 소두장은 팥을 삶아서 띄우고, 콩은 볶아서 삶아 주는 게 특이하다.

소두장은 맛과 향뿐 아니라 영양도 만점이다. 팥 누룩에 콩을 볶은 뒤 갈아서 숙성시키기 때문에 콩에 없는 영양소를 보충하고 소화를 도와‘조상들이 전해준 지혜의 산물’이라고도 불린다.

장독을 열어 전통장을 설명하고 있는 최명희 명인

최 명인은 “잊혀 져 가는 소두장을 대중들에게 알려야 될 의무가 있다”며 “다만 팥의 경우 일찍 쉬어버린다는 특성이 있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소두장을 명품화시키기 위해 더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 명인은 우리 장류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는 다양한 변신을 시도한다.

지금도 장을 잘 모르는 외국인과 갈수록 우리 장을 멀리하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장류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이다.

명인은 제비원의 전통장류도 종류가 많지만 참마·쇠고기볶음·토마토 고추장, 청국장 가루와 환, 검정콩으로 만든 환과 가루 등 가격대와 무게를 달리한 다양한 제품군도 내놓았다.

이와 함께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냄새가 적고 면역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바실러스 퓨밀러스균’이 살아있는 청국장을 개발해 현재 한국유전자은행에 보관돼 있다.

2018년에는 집에서도 간편하게 전통 고추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히트상품 ‘DIY 고추장세트’를 출시해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상품은 4인 가족이 1년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양이지만 가격은 사 먹는 것에 비해 1/3 정도이다. 이 제품을 구매한 어떤 집은 직접 만든 고추장에 가족 모두가 함께 만들었다고 가족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한국식품연구원 식품기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동제비원 전통식품 앞마당에 들어서자 1000여 개의 장독대들이 눈에 들어온다. 최명희 명인의 손을 거친 이 장독을 보니 100년 익어 온 깊은 맛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최명희 명인과 전수자인 아들 김준영 씨

최 명인은 “대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한 장류시장에서 중소기업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수시장은 정체돼 있고, 안동에서 나는 최고의 재료에다 전통의 제조법을 고수하다 보니 원가는 대기업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어 “우리의 장 문화는 독특하면서 지혜롭다”며 “현재 추진 중인 우리 장 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이뤄져 국내시장 뿐만 아니라 국외시장에서도 장류 문화가 새로운‘한류’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고 했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