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조 주원장의 넷째 아들 연왕 주체가 반정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주 주변을 정리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조카인 황제 건문제가 있는 남경에 쳐들어갔다. 연왕이 남경을 향해 출발하려고 할 때 최측근 도연이 연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신에게 청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오?” “남경에 가면 방효유라는 뛰어난 학자가 있습니다. 남경이 함락되고 설사 그자가 항복하지 않더라도 절대 죽이지 마십시오. 만약 죽여버리면 천하의 진정한 학자는 씨가 말라버립니다.” 학식이 깊고 품행이 반듯한 방효유는 황제 건문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남경을 함락시킨 연왕은 건문제를 쫓아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바로 영락제 성조다. 황제가 된 연왕은 전 황제의 측근들 이름을 적은 ‘간신방(奸臣榜)’을 공포하고 적폐청산에 나섰다. 중신 29명을 처형, 피의 숙청을 하면서도 도연의 부탁을 받은 방효유만은 살려두었다. 영락제는 방효유에게 자신의 즉위교서를 기초하도록 명했다.

사대부의 절개를 목숨보다 중히 여긴 방효유는 영락제의 청을 거절하면서 “연의 도적이 황제 자리를 찬탈했다”고 쓴 뒤 붓을 던져버렸다. 화가 치민 영락제는 “그렇게 죽고 싶은가. 구족을 멸하는 것이 겁나지 않는가?” 호통쳤다. “십족을 멸한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방효유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되받았다. 영락제는 방효유의 입을 귀밑까지 찢은 뒤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방효유가 보는 앞에서 9족을 멸하고, 그의 친구까지 잡아들여 9족을 멸하던 관례를 깨고 10족을 멸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9족이란 부계 4촌, 모계 3촌, 처가 2촌 등을 말하는 것인데 친구를 더해 10족이 된 것이다. ‘방효유 사태’로 수천 명이 처형되는 피바람 대학살에도 방효유는 흔들림이 없었다.

동생의 죽음에 앞서 눈물을 흘리자 동생이 말했다. “눈물을 흘리지 마십시오. 인의(仁義)를 이루는 것입니다.” 방효유도 결국 능지처참을 당했다. 인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방효유의 정신은 후세 사람들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존경받고 있다. 목숨 걸고 조국을 지켜낸 호국영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막는 정부의 처사는 인의를 먹칠하는 짓이다. 더 이상 나라의 명예를 더럽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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