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6월 4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언급하는 제1차 담화를 발표했다. 4일과 11일 각각 통일부와 청와대가 ‘전단 살포 단속’과 ‘남북합의 준수’ 카드를 내밀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13일 김여정은 ‘남한과 결별’을 선언하면서 ‘이와 관련된 단계적 조치’를 언급하는 제2차 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의 지위가 대남관계 총책임자인 만큼 남북관계 단절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남한 정부는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나오는데, 헛다리만 짚어대니…. 남한에 대한 누적된 불신, 그리고 ‘미·중 분쟁에서 북한의 생존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괜찮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데도 말이다.

먼저 남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렸다. 제1차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쪽 평화의 집. 제2차는 2018년 5월 26일 판문점 북쪽 통일각. 제3차는 2018년 9월 18~20일 평양의 노동당 청사와 백화원 초대소. 합의문 내용은 경제협력, 다양한 교류,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등이다. 여기서 북한의 최고 관심사는 북미회담의 성공이다. 미국 주도의 「UN 대북제재 결의안」이 해제되지 않으면 남한의 지원과 협력, 미국과 서방의 지원, 북한의 대외무역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하고 합의문에 서명한 이유는 남한이 북미 간 지렛대 역할을 충분히 해 줄 것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관점에서 남한이 미국에 한없이 무기력했기 때문에, 남한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은 미·중 분쟁에서 최선의 생존방식을 선택했다. 2020년 5월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보안법」 통과시켰다. 동 법안은 외세개입, 국기문란, 테러에 대한 처벌과 홍콩독립 반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콩을 중국 본토에 편입시키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1992년 미국은 「홍콩법」을 제정하여 관세, 투자, 무역, 비자발급 등에서 중국 본토와 다른 특별지위를 부여했다. 「홍콩보안법」이 미국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세계 2위이며, UN 분담금과 평화유지분담금에서도 세계 2위이다. 이러한 중국이 패권경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셈이다. 더하여 미국이 중국 포위작전으로 구상한 G7 확대기구에 남한이 참여를 수락하자, 북한은 철저하게 중국 편에 서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북한의 시각에서, 남한은 의미 없는 국가가 되어 버렸다. 북미회담에서 남한이 모종의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이용하여 업적 쌓기에 골몰하고, 여당은 이를 선거에 이용하기에 바빴다. 게다가 홍콩사태가 터지자, G7 가입을 선언하는 등 북한과 중국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북한으로서는 미·중 간 신냉전과 남한의 무능력에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북미회담이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살기 위해서는 중국에 바짝 붙어야 했다. 2019년 기준 북한의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95.2%에 달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요구하던 그렇지 않던, 한반도의 긴장 조성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다. 중미 간 화해의 시점에, 중국이 북한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릴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김여정은 제2차 담화에서 “다음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남북경협과 남북합의사항 파기를 군대 주도로 실행하고, 핵실험과 군사훈련 및 부대 이동 같은 무력시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청와대와 정부는 ‘대북 전단’ 해결에만 몰두하다, 뒤통수를 맞고 정신이 없는듯하다. 번지수 오류를 인식조차 못 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북한의 적대적 행위를 잠재울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이다. 안보리의 대북제재가 남북경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고, 미·중대립으로 북미회담 타결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우선 G7 확대기구 가입을 철회하고 「홍콩보안법」과 관련해서는 중립을 준수하는 등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해야 한다. 동시에 미·중 관계 개선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북미회담에서 남한의 역할증대는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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