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대구읍성은 임진왜란 전 선조 23년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토성으로 쌓았다. 그 후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되자 경상도 감사 겸 대구부사인 민응수에 의해 대구성곽의 요청이 있었다. 영조 12년 1736년 석성의 형태로 착수하여 이듬해 여름 완공하였다고 한다. 그 후 대구는 한반도 남쪽의 정치·경제·문화의 거점도시였다.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까지는 서울, 평양, 대구의 3대 도시였다.

시내 중심의 경상감영에서 바라보면 안산에 해당하는 비슬산 줄기인 성불산 즉 앞산은 용의 몸 덩어리가 되어 대구를 지키고 있다. 배산에 해당되는 팔공산은 종교의 성지이며 불교문화의 보고였다. 갓바위 부처님, 동화사, 은해사, 파계사, 송림사 등 많은 명소들을 품고 있다. 경상감영의 남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삼봉산 지역이라 하여 현재의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자리한 수도산을 중심으로 봉산동, 대봉동, 봉덕동의 3봉(鳳)이 형성되어있다. 다시 성불산 이라 불리 우는 앞산과 신천이 맞닿는 곳에 용두골과 용두방천이라 명명되어 있어 용의 혈이 비슬산에서 용두골을 지나 마태산, 수도산, 연귀산 으로 뻗어나 청라언덕과 달성토성을 거쳐 오봉산까지 대구를 관통하고 있다.

이것은 대구의 분지를 용의 혈에 봉황의 마을이 함께하고 그 사이로 신천과 금호강이라는 물줄기가 합하여 영원한 유, 불, 선이 함께 존재하는 대도시로 성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도시는 쇠락의 길로 들어갔다. 한국의 고담도시, 경제성장이 멈춘 도시, 변화를 싫어하는 도시, 옛것을 잘 살리지 못하고 관광할 것이 별로 없는 도시로 낙인 찍혔다.

몽골 울란바토르 대통령궁 광장에 조성된 아셈기념조형물.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잠사 농업기술로 시작된 이곳은 해방 이후 한국동란, 60년대 섬유산업을 기반으로 한국경제성장에 기여 하였다. 정치·경제·교육·문화도시로 남부수도인 대구는 이천 년 대 이후 타 도시에 비하여 모든 면에서 밀리는 형편이었다. 특별히 대구지하철대참사 이후 이곳은 창의적 새로움을 멀리하고 시대정신인 트렌드를 읽지 못한다고 느껴지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7월에 몽골 울란바토르에 전시회 관계로 갔을 때이다. 친분이 있는 전직 몽골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한 몽골작가 왈, “감옥에 있는 대구 출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셈 국제회의 차, 여기에 참석한 기념 사인이 있는 조형물입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어서 “대구경북 출신 이명박, 박근혜 전직 한국 대통령들 감옥에 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

그 소리를 듣고 충격이었다. 대구경북의 이미지를 이 ‘짧은 문장’으로 대신하는 외국의 지식인에게서 비친 모습에 긴장되었다. 누군가 이야기한다. 비슬산이라는 영험한 용의 혈을 파헤쳐 앞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내어 용이 새끼를 품고 잉태하고 있는 비슬산 정기를 쇠태 시켰고, 이로 인해 대구의 정치·경제·사회의 일들에 폐해가 생겼다고 했다. 이어 용두골지역의 무분별한 도로공사와 봉덕동, 대봉동, 봉산동의 삼봉 지역 내 여러 산들인 진산을 파해 치고 건들어서 아파트를 지어 봉황의 터에 정기가 소진했다고도 했다. 물론 지금의 시대에 비과학적이고 실없는 얘기로 돌리고도 싶었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새로운 창조적 도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대구를 위하여 하루 빨리 대구읍성의 원형을 고증하여 복원시켰으면 한다. 옛 모습의 성곽을 지금의 실정에 맞게 잘 복원하면 그것만으로 세계적 관광거리가 될 것이다. 박중양 이라는 친일세력이 허문 진동문, 달서문, 영남제일문, 공복문의 4대 문과 2소문을 합한 6개의 성문과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 망경루의 4개 망루를 복원하여 대구읍성의 완전한 복원을 기대한다. 현재 대구시는 경상감영 복원 정비사업과 함께 진행한다고 하니 이참에 큰 기대를 하여본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