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은 1861년에서 1865년까지 벌어진 미국의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에서 미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고자 한 남부 지역을 굴복시킴으로써 연방(聯邦)을 온전히 보존한 것은 물론, 남부가 목숨 걸고 사수하고자 한 노예제(奴隸制)를 폐지한 ‘위대한 리더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링컨이 노예제 폐지론자가 절대 아니었으며, 오히려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인종분리주의자였다는 것이다. 1852년에 있었던 한 주요 정치인의 장례식에서 행한 추모사에서 링컨은 미국의 노예들을 아프리카로 보내어 살게 할 것을 종용하였다. 1858년 일리노이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 토론회에서 링컨은 자신이 ‘백인과 흑인 간의 사회적 및 정치적 평등성을 전혀 지지하지 않고 지지한 적도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흑인들의 선거권 행사, 배심원 선출, 공무 진출 및 백인과의 혼인을 반대한다고 선언하였다. 1862년 9월에 링컨이 발표한 그 유명한 ‘노예 해방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의 대상은 당시 반란 상태에 있던 미국 남부의 11개 주에 살던 노예들로만 국한되었는데, 이는 그 선언의 목적이 인류애에 기초한 미국 노예들의 전면적인 해방이 아닌, 남부 노예들의 북부군 입대를 부추기기 위한 정치적 술수에 불과했다는 학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 이후 전 세계로 번진 반인종차별 시위로 인해 근대 서양 사회를 풍미했던 여러 역사적 ‘위인’들의 동상(銅像)들이 때아닌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17세기 프랑스 중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콜베르(Colbert), 18세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상륙한 선장 쿡(Cook), 19세기 영국의 자유무역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던 필(Peel), 20세기 독일 나치 세력에 맞서 싸운 처칠(Churchill) 등이 제국주의자들 및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었다는 이유로 이들의 동상이 반인종차별 시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대두되자, 관련 당국이 동상 보호를 위한 경찰 작전까지 개시했다고 한다.

근대사회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의 기반을 사실상 구축했다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인물들 중에는 분명 현대 사회의 가치와 윤리의식을 기준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사상을 지니고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이 많다. 이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반인종차별 시위는 이러한 역사적 ‘죄인’들이 남긴 유산이 통째로 부정되고 잊혀 져야 한다는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 발전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제대로, 온전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과거의 가르침을 왜곡시키고 무력화시킬 수 있다. 링컨이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정치적 기회주의자라고 해서, 그의 노예 해방 선언이 불러온 엄청난 사회 변혁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식투쟁에 들어간 간디(Gandhi)를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할 정도로 인도인들을 우습게 봤던 처칠이라고 해서, 전체주의에 맞선 그의 끈질긴 대항과 결과적 승리가 ‘스트롱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내 자의대로, 내 입맛대로 골라서 살펴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윤미향 한 개인의 일탈행위를 빌미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기준으로는 이해해주기 어려운 역사적 인물들이 활약하였다고 하여 그 시대의 유산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지금 우리의 가치관과 우리의 행동이 미래 세대에게 절대적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우리는 과연 확신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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