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자청하며 북미 간에 외줄을 타며 노력해 왔던 한반도 평화정책이 16일 북한 측이 남북 화해 상징인 개성 소재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남북관계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공을 들였던 대북한 관계 개선책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김여정 북한노동당 제1부부장 말 한마디로 처참한 ‘일장춘몽’이 됐다.

문재인 정부는 김여정이 지난 13일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는 담화를 접했을 때 ‘설마 행동으로 옮기겠나’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 됐다. 또 북한 측에 특사를 파견하면 격앙된 북한 김정은 남매의 대남감정을 해소시킬 것으로 보고 특사 파견 요청을 15일 북측에 비공개로 했다. 그러나 비공개로 한 특사 파견 사실까지 북한 측이 16일 전격적으로 공개 발표했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5일 남조선 당국이 특사파견을 간청하는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하였다”며 “우리의 초강력 대적(對敵) 보복공세에 당황 망조한 남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 특사를 보내고자 하며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으로 한다”고 했다. “방문 시기는 가장 빠른 일자로 하며 우리 측이 희망하는 일자를 존중할 것이라고 간청해왔다”고 했다. 또 “남측이 이렇듯 다급한 통지문을 발송해온 데 대해 김여정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리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17일 북한 측이 남한 정부의 대북특사 파견 공개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강경한 대북 입장문을 밝혔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사리분별 못 하는 북한 측의 언행을 앞으로 절대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를 한다”며 “북측은 우리 측이 현 상황 타개를 위해 대북 특사를 비공개로 제의한 것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이는 전례 없는 비상식적 행위로 대북 특사 파견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로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 측이 대북 전단살포를 핑계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당국자와 탈북자들을 상대로 인격을 난도질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데도 희한하게도 집권당 내부에서는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탈북자 단체와 북한의 비핵화 정책을 고수하는 미국 정부 탓으로 돌리는 대북 굴종 자세를 보여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여권 핵심 관계자들은 북한의 무도한 도발 협박에 반박하고 비판하기는커녕 “북한 말에 일리가 있다”며 감싸기 바빴다. 15일 여권 중진의원은 “ ‘(남한이)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북한 표현이 뼈아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남북이 비방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우리가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이렇듯 북한 달래기에 매달려온 것이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이다. 이번에도 김여정이 못할 말 안 할 말 등을 쏟아냈는데도 잘못이 우리에게 있는 듯이 고개를 조아린다. 16일 오후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후 송영길 국회외교통일위원장은 “포로 폭파하지 않은 게 어디냐”고 했다. 국가 예산 180억 원이 투입된 대한민국 건물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폭파했는데도 대포 대신 폭탄을 사용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다. 그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뒤늦게 말을 바꿨다. 청와대 국정기획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북의 도발이 시작된 후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탄생도 북한 입장에서는 큰 메시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탈북민 출신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인 것처럼 뉘앙스를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17일 김여정은 북한에 보낸 문 대통령의 6·15 20주년 메시지에 대해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며 “한마디로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놓았다”고 했다. “그 꼴불견 혼자 보기 아까워 우리 인민들에게도 알리자고 오늘 말폭탄을 터뜨리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은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등 이전의 비난보다 이날 말폭탄의 날을 더 세웠다. 지난 3년간 오매불망 북을 감싸온 청와대가 어째서 김정은도 아닌 김여정에게 이런 무례를 당해야 하나. G7에 초청받는 나라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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