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한동대 통일한국센터 교수, 유라시아 원이스트씨포럼 회장

120년전 19세기에서 20세기로 올라가던 바로 그 순간,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열역학 제2법칙으로 유명한 과학자 윌리엄 톰슨(켈빈경)에게 새로운 세기를 여는 키노트 스피치를 부탁했다. 톰슨은 대영제국의 찬란한 미래를 예견하며 이제 인류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발견이 끝났기에 앞으로의 세상은 그것을 활용하여 어떻게 유토피아를 만들 것인가 그 과제만 남았다라고 장미빛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세계 제1차대전의 발발과 볼셰비키 혁명 그리고 스페인 독감으로 초토화된 세계는 문명사의 축을 지중해의 유럽에서 미국의 태평양으로 옮겨버렸다. 그 시절 대영제국의 시대가 그렇게 쉽게 마감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코로나19는 21세기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아니 역사가들은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기록할 것이다.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일어난 팬데믹 코로나의 여파는 문명사적 전환을 가져오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혹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여기며 여전히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00년 전의 게임체인지와 비교하며 살펴보자.

첫째, 새로운 패권 패러다임의 등장이다. 스페인-네덜란드-영국의 제국주의 해상 권력이 페르시아-중국의 육상 실크로드를 압도한 이후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해군력을 누가 장악하는 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것이 1차대전 이후 초토화된 유럽에서 미국 해군(US Navy)으로 넘어왔고 미국은 세계 경찰의 역할을 담당하며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핵항모와 핵잠으로 상징되는 핵무력 패권이 20세기 냉전구도의 중심축이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바닷길이 봉쇄된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으로 다시 육상 비단길을 통해 유라시아를 통합하려는 시도와 함께, 우주굴기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해왔다. 최근 세일혁명을 통해 에너지원까지 확보한 미국은 오히려 자국중심주의 보호무역으로 역공을 가하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중국의 도전은 차라리 가소로운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눈에 보이는 핵무력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4월 10일 시진핑의 코로나 종식 선언 이후 남중국해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던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항공모함에 코로나가 퍼져나가자 그대로 퇴각하고만 사건이 상징적이다. 21세기 패권은 핵이 아니라 생물학 무기로 대치될 것이다. 그리고 이 무기는 언제 어디서 다시 나타나 세계를 또다시 팬데믹으로 몰아갈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공포를 안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자국의 봉쇄가 무의미함을 전 세계에 알렸다.

둘째, 가치 전쟁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20세기 세계는 진화론에 근거를 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세력이 내세운 자유의 가치와 막시즘에 근거를 둔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력이 내세우는 평등의 가치와의 싸움이었다. 그 가치 전쟁은 한국을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몰아 냉전의 희생양을 만들었고 70년 분단체제를 이어오게 했다. 극도의 국가주의와 자유주의가 맞물린 최전선이 바로 휴전선이 되었다. 그러나 식민지피해 국가로서 그 참혹한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유일한 국가로 올라섰다. 4·19와 5·18을 넘어서 마침내 1987 유월항쟁의 성공은 천안문 사태를 촉발했고 동구권과 소련 공산주의 연쇄 붕괴로 이어지게 하는 방아쇠가 되었다. 그로 인해 세기의 전쟁 동서냉전은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로 끝나는 것 같았다. 공산주의 국가조차도 살아남기 위해 서둘러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미국적 신자유주의의 패권은 세계 경제를 사로잡는 듯했다. 셰일 가스 개발로 원유수출국까지 된 미국의 횡보는 거침이 없었고, 미국의 시대는 1세기는 더 갈 것이라는 예측들이 난무했다. 그러다가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자본주의의 폐해 속에서 고통당하던 사회의 모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약육강식의 송곳니로 강자만의 사회를 구가해 온 신자유주의의 종주국 미국의 온갖 치부가 전 세계인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중계되었다. 흑인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운동과 제국주의의 상징 노예상인들의 동상철거는 새로운 가치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이다.

셋째, 새로운 대안 체제의 모색이 시작될 것이다. 핵무력은 강자와 약자, 승자와 패자의 구도 속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코로나 가져온 세계질서는 평등의 가치와 사회주의의 가치를 다시금 부활시켰다. 그러나 유럽발 68혁명 이후 사회주의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여 복지국가의 선봉에 섰던 유럽과 캐나다의 선진국들도 코로나의 기습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들이 지닌 핵심가치는 인권에 기반을 둔 개인주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의 전체주의적 봉쇄 통제 시스템에 의해 코로나가 조기 종식되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비추어지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불안감을 더해 주었다. 그 핵심에는 AI 안면인식기술에 기반을 둔 강력한 IT 인프라가 국가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빅브라더 사회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며 코로나를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한국이다. 그로 인해 한국의 국제사회 위상은 올라갔고, G7+ 회의에 초청까지 받게 되었다. 이미 30-50클럽(인구 5000만 이상의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국가)에 들어간 일곱 번째 국가이기에 그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분단체제와 북한의 핵무력은 여전히 우리의 안보와 경제가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이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만 한다. 분단 현실은 잠시잠시 망각 속에서 무디어질지언정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 상황으로 우리를 불현듯 몰아간다. 이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남북관계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K-방역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우수한 보건복지 시스템? AI 기반 신속 진단 키트 개발? 빅 데이터 IT 인프라 기술을 통한 확진자 추적 시스템? 부분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단독으로 백신 개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아니 백신 개발이 답인가? 코로나19가 백신 개발로 종료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단견이다. 곧이어 새로운 변종 코로나가 나타나 전 세계적 혼란과 교란은 지속될 것이다. K-방역의 핵심은 적절한 정부주도(small brother)에 호응하여 일치단결하여 스스로 개인주의를 포기할 수 있었던 한국인만이 지닌 집단 연대 의식에 있다. 이 의식은 오래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스스로 돕는 두레정신이요, 자발적 공동체 의식이다. 서구적 개인주의가 가져온 이기적 혼란 상황도 중국식 빅 브라더 사회가 몰아가는 억압적 집단의식도 아닌, 자기희생적 상부상조 정신으로 대구로 달려갔던 수천 명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의 모습이다. 그것이 달랐던 것이다.

이미 게임체인지는 시작되었다. 코로나19는 그 시작을 알렸을 뿐이다. 핵무력에서 바이러스 무력으로의 전환, 화석연료시대(산업화 물질문명)에서 디지탈연료시대(빅데이터의 유비쿼터스 문명)시대의 전환, 그리고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와 같은 중간기를 거치겠지만, 앞으로 20-30년에 걸쳐서 서구중심의 태평양 시대는 동해와 북극해를 아우르는 유라시아 시대로 전환할 것이다. 그 중심에 한반도가 있다.

정부와 시민의 연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대, K-방역을 중심축으로 한 국제적 방역공동체의 연대, 자유와 평등의 가치연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가 될 것이다. 그 모든 연대의 끝에는 20세기의 냉전구도의 상징인 휴전선의 철조망을 끊어낼 남과 북의 평화연대가 마지막 숙제로 남아있다. 북핵과 남코로나의 만남, 그것이 우리 민족을 유라시아 시대로 이끌어갈 신 동력이 될 것이다. 어떤 외세의 간섭도 압력도 배제한 채, 우리 민족이 자발적으로 하나 되어 연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일어설 것이다.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20세기의 핵무력의 냉전 구도의 틀에서 나와야 한다. 게임체인지가 시작되었는데, 여전히 구태적 발상과 의식 구조 안에 갇혀 있으면 곤란하다. 지금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21세기를 주도할 새로운 해법이다. 자발적 연대와 공동체성의 회복이 답이다.

평화경제의 상징,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 허무하다. 화도 난다. 그러나 지금은 반성과 자각이 필요한 시간이다. 서로 연대하지 못하는 어떤 개인도 조직도 국가도 21세기에는 결국 이렇게 무너져내릴 것이다.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서로 밉고 또 화가 나더라도 또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부부싸움 끝에 화가 치밀어 사발을 깨고 분풀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영원히 갈라설 수 없는 것은 그로 인해 우리의 자녀들과 후대들이 겪어야 할 고통과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칼로 물 베기처럼, 화가 가라앉으면 또다시 살을 맞댈 수밖에 없는 부부처럼, 우리는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 북과 남의 총명하고 재주 많은 우리 자녀들이 신이 나서, 마음껏 끼를 펼치며 유라시아를 경영하고 세계를 누비게 하자. 팔도의 장단 가락에 춤을 추며 강강수월래를 부르는 그 황홀한 통일의 날을 꿈꾸며, 남과 북이 함께 자발적 연대를 다시 만들어가자.

정진호 한동대 교수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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