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에
은발(銀髮) 늘어가니
은의 무게만큼

고개를 숙이리.


<감상> 수많은 낟알을 지닌 곡식은 고개를 숙인다. 햇살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자신을 단련시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은발이 가득하다고 누구나 고개를 숙이는 건 아니다. 곡식처럼 자신의 내면을 수양해 온 사람만이 고개 숙이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이 먹을 만큼 먹어도 머리카락만 하얗고 아상(我相)에 가려 제 허물을 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주위에 참 많다. 그러니 고개는 쳐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다니고, 의자에 앉아서는 몸을 뒤로 젖혀 거드름을 피운다. 좁은 공간에서 소수 사람들이 자신에게 복종한다고 신이라도 되는 냥 착각하고 만다, 아주 큰 집단은 오죽하랴. 센 머리카락만큼, 은의 무게만큼 이제 방하착(放下着)을 연습한다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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