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년 역사 자랑' 한 장 한 장 정성 담아 7대째 전통 한지 생산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23호인 이자성 한지장(7대)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23호인 이자성(72) 한지장은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에서 7대째 전통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청송 전통 한지’라고 쓰인 나무 명판이 커다랗게 내 걸린 건물 앞 마당엔 금방 잘라낸 닥나무 가지가 줄을 지어 켜켜이 누워 있다.

이 장인이 직접 재배한 참 닥나무를 베어내 말리는 작업 중이다. 이 장인은 직접 재배한 참 닥나무를 낫으로 일일이 베는 작업으로 한지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참 닥나무 중에서도 1년생 미만으로 몸체에 생채기가 없는 것들이 섬유가 여리고 부드러워 품질 좋은 한지를 만들 수 있다.

참 닥나무는 한 아름씩 묶어 삶는 동안 증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비닐을 여러 겹 씌워 쪄낸다. 7시간가량 증기를 쐰 참 닥나무는 껍질과 나무 대를 분리한다.

나무 대는 장작으로 사용되고 ‘피닥’이라고 불리는 껍질은 한지가 된다.

이자성 한지장의 장녀 이규자씨가 피닥을 건조시키고있다.
피닥이 마르기 전 일일이 칼을 사용해 갈색빛이 도는 겉껍질을 긁는다. 이 작업을 오래오래 정성 들여 해야만 순백의 빛깔을 지닌 한지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손이 부르트고 칼에 베이기도 하는 험난한 시간이다.

피닥에서 겉껍질을 한 번 더 벗겨낸 ‘백닥’은 하루 동안 뜨거운 햇볕에 바삭해질 정도로 말려 1차 자연표백을 한다. 그리고는 바람이 통하도록 잘 묶어 그늘에 보관해둔다. 이 상태에선 아직 백옥 빛이 도는 한지의 색이 아닌 누르스름한 나무 빛이 남아 있다.

백닥을 부드럽게 하고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잿물에 삶는다.

이때 콩깍지를 태워 만든 잿물을 사용하는데 천연 잿물을 사용하면 종이가 더 질겨지고 오래가게 된다.

잿물에 4시간 정도 삶은 뒤 1시간가량 뜸을 들이고 꺼낸 백닥은 이름과는 다르게 새카맣게 콩 잿물이 배 있다.

이자성 한지장 동생 병환(60)씨가 발뜨기 작업을 하고있다.
‘발 뜨기’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외발 뜨기 기법은 질기고 튼튼한 한지를 만든다.

이 장인은 “앞 물을 떠서 초지를 받아들이고 옆 물을 켜서 한지의 두께를 조절한다”며 “이 작업이 반복, 교차 되면서 견고한 섬유조직이 생긴다”고 질기고 튼튼한 한지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팔다리가 불편한 그를 대신해 동생 병환(63)씨가 발뜨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은 종이는 전통식 외발로, 큰 종이는 쌍발을 사용한다. 작은 종이는 전통식 외발로, 큰 종이는 쌍발을 사용한다.

외발 뜨기 한 한지는 한 장 한 장 실을 끼워 포개 쌓는다. 한지 사이사이에 실을 끼워 두면 한지를 분리하는 작업이 쉬워진다.

두툼하게 쌓아 올린 한지는 ‘굴렁대’라는 도구를 이용해 물기를 한 번 더 제거한 뒤 압착기를 이용해 물을 짜낸다

물이 빠진 눅눅한 한지는 한 장 한 장 떼어내 직접 만든 철재 건조대에 정성스럽게 붙인다.

백닥 불순물 제거작업을 하고있는 이 한지장의 부인 김화순씨
이 장인의 부인 김화순(68)씨는 능숙한 손길로 일부 과정을 거친 백닥을 부드럽게 하는 작업과 깨끗한 한지 생산을 위해 불순물 제거와 완성된 한지를 건조대에 붙이고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솔로 펴 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건조대 안쪽에서 마른 닥나무대가 타는 열기로 한지의 습기가 제거되면 조심스럽게 떼어내 차곡차곡 쌓는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한 장의 한지가 탄생하게 된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는 이 한지장이 만든 한지
이 장인이 만든 한지는 시중에서 보는 일반 한지보다 질기고 부드러우며 윤기가 흐른다. 반지르르한 윤기는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 장인이 만든 한지만의 특징이다.

이 장인은 “이 윤기 나는 한지를 보고 사람들은 ‘무얼 넣어 만들었기에 이렇게 빛이 나느냐’고 묻는다”며 “따로 무얼 넣는 게 아니라 사계절이 뚜렷한 청송 날씨와 어디에 내놓아도 부럽지 않을 만큼 맑고 깨끗한 청송의 물이 자연스럽게 빚어낸 윤기”라고 말했다.



△가람공방.

이 장인의 한지 작업장 옆엔 ‘가람공방 이란 이름이 붙여진 청송 한지 체험관이 자리 잡고 있다.

청송군의 지원으로 지어진 이곳에서는 학생들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지·공예제작 체험학습이 이뤄진다.

닥나무 껍질 벗기기, 한지 뜨기, 한지공예 체험 등의 프로그램은 지역 청소년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청송지역 필수여행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는 500여 명의 학생과 일반인이 다녀갔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아직 1팀도 받지 못했다며 “체험이 문제냐”며 “하루빨리 코로나가 물러나고 경제가 살아야 한다”며 나라 걱정을 앞세웠다.

대화 중 공방으로 안내하며 지난해 학생들이 한지에 그린 그림과 종이상자 등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는 이 장인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번졌다.

이자성 한지장의 장녀인 규자씨.
이 장인은 “학생들이 와서 전통 한지를 만들어보고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하는 일이 우리의 전통을 잇는데 작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며 “수입종이들에 밀리고 설 자리를 빼앗긴 상황에서 한지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한지체험 교육은 8대 전수자인 이 장인의 장녀인 이규자(44)씨가 직접 맡고 있다.

이 장인은 “관광객들 체험 교육도 잘하고 한지 뜨는 기술도 가장 뛰어나다”며 딸 애는 600장 이상 뜬다”며 규자씨에 대한 자랑도 덧붙였다.

7대째 가업을 묵묵히 이어오고 있는 이 장인과 그의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돕는 가족들이 청송 한지의 200여 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장인가족들이 품고 있는 우리 것에 대한 확실한 자부심과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굳은 심지가 청송 한지의 역사를 계속 써 내려가고 있다.

한지공예 전시장.
이 장인이 현재 생산하고 있는 한지의 종류는 소재지, 책지, 창호지, 화선지, 미술지, 벽지, 장판지, 미표백지 등이며 두께에 따라 2합지와 3합지, 4합지, 5합지에서 10합지까지 있다.

주문 생산하는 이 장인의 한지는 전업 작가와 대학교수, 서예나 동양화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주 고객이다. 전국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지만 일손이 부족해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닥나무 가로수로 조성된 청송한지마을 입구
이자성 장인은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전통을 고수하며 청송한지 생산에만 매달렸다. 값싼 중국산이나 타지의 닥나무에 일절 손대지 않은 것도 지금은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사림들이 우리 것을 귀히 여겨 찾아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닥나무가 부족하고 일손이 달리더라도 수 대조 조상님들께서 오래전부터 청송 한지를 지켜오셨듯이 돈보다는 전통을 고수하고 가치를 보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진 기자
이창진 기자 cjlee@kyongbuk.co.kr

청송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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