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0년' 아직 갈길 멀다…자치·분권형 행정시스템 대전환 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수 대응 사례를 공유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자치분권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코로나19 극복 자치분권 콘서트’가 지난 5월 7일 국회 의원회관 제2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염태영 수원시장(왼쪽 네 번째) 등 참석자들이 국회에 계류 중인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합경찰법안 전부개정안, 고향사랑기부금법 제정안, 중앙지방협력회의법 제정안 등 자치분권 4대 법안의 신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

올해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30년이 됐지만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수도권을 제외한 대다수 자치단체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20대 국회서 아쉽게 무산되면서 지방자치법, 중앙지방협력회의법, 자치경찰 법 등이 21대 국회에서 신속하게 통과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그동안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에 대해 세금을 축내는 하마에 불과하며 고비용·저효율 제도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하지만 중앙집권화된 사회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방지하고 권한과 자원의 분산을 통한 개방되고 민주화된 사회와 대자본과 거대 권력의 힘이 아닌 풀뿌리 시민들의 참여에 의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국가로부터의 응급대책·긴급지원이 있어도 현장을 가장 잘 아는 현지의 주민들과 기초생활단위의 지자체가 우선이 되고, 기초지자체를 보완하는 광역시·도가 주체적으로 지휘를 하지 않는 한, 위로부터의 상의하달식의 방침과 지원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국가 의존적인 지자체는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시스템하에 기초 지자체부터 자립적으로 직접 책임질 수 있는 권한과 자원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실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으로 인해 전 세계가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코로나19 방역의 1등 공신은 중앙정부와 호흡을 같이 했던 지방자치단체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북일보는 민선자치 25년을 맞아 지방자치제도의 어제와 오늘,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과제 등을 4회 걸쳐 게재한다.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의 의의와 과제.-역대 정부의 지방이양 추진 .

지난 1987년 6·29 선언에서 지방자치제 실시가 천명되고 그 결과 지방자치제도를 유예하고 있던 헌법부칙이 삭제되면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했다. 매년 10월 29일을 ‘지방자치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는 것도 헌법 개정을 통해 지방자치가 다시 시작된 날짜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처럼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1991년 지방의회 의원선거가 실시 되면서 지방자치의 시대가 다시 열리게 됐다.

1988년 당시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사무를 처리함에 있어서의 기본원칙과 사무의 범위를 명시했다. 또한 시·도, 시·군·구로 구분해 자치단체의 종류별로 사무를 배분하는 기준도 밝히고 있으며, 외교·국방·사법·국세 등 국가의 존립에 필요한 사무나, 근로기준, 측량단위 등 전국적으로 기준의 통일 및 조정을 요구하는 사무 등과 같이 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할 수 없는 국가사무도 예시하고 있다. 특히 시·도와 시·군·구 사무를 처리함에 있어 서로 경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거나, 그 사무가 서로 경합되는 경우 시·군·구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기본원칙도 명시했다.

이러한 사무 배분의 기본원칙과 기준에 따른 중앙권한의 지방이양 추진은 1991년 당시 국무총리훈령(정부조직관리지침)에 따라 총무처에 ‘지방이양합동심의회’를 설치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다. 지방이양합동심의회에서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총 1174건을 지방이양 사무로 확정했다. 이후 지방이양의 법률적 추진기반 마련을 위해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이양촉진 등에 관한 법률’(1999년 1월 29일)이 제정되고 지방이양 추진을 전담하는 기구로 대통령 소속의‘지방이양추진위원회’가 설치됐다. 지방이양추진위원회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총 1568건의 지방이양 사무를 확정했다. 그동안은 지방이양 추진기구에서 지방이양만을 전담했다면, 2008년 이후에는 관련 법률이 ‘지방분권촉진에 관한 특별법’(2008.2.29.)으로 재정비되면서 중앙과 지방 간의 권한을 재배분하는 과제 외에 △자치입법권 확대 △지방재정 확충 △교육자치제도 개선 등 지방자치 전반에 걸쳐 분권과제를 추진하는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를 중심으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총 1587건의 지방이양 사무가 확정됐다. 이 시기까지는 인·허가와 같은 집행적 사무와 기관위임사무가 지방이양 사무의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지방이양으로 확정된 사무의 수가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2012년도를 전후로 해서는 지방이양이 확정된 사무의 수가 이전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 반면에, 지방자치 또는 지방분권과 관련된 추진과제의 내용 범위가 넓고 다양해졌다. 현재는 지방분권과 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법률이 통합된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2018년 3월 20일 일부개정)에 따라 대통령 소속의 자치분권위원회에서 자치분권의 과제 중 하나로 중앙권한의 지방이양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이양일괄법, 어떻게 추진됐는가

지방이양일괄법의 제정은 참여정부의 지방자치분야 국정과제로 포함된 이후 2004년과 2010년, 또 2015년에도 추진한바 있다.

2004년에는 지방이양일괄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법상의 상임위원회 소관주의에 위배 된다는 이유로 법안접수가 되지 않았고, 2010년도에도 같은 사유로 법안 제출이 무산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 지방이양일괄법의 제정이 포함돼 있기도 하지만, 지방이양일괄법의 추진에 있어 구심점이 된 것은 2018년 3월 26일 대통령발의 개헌안이 무산된 시점 이후라고 볼 수 있다. 개헌안 발의 당시 대통령은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가발전의 가치이자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과 협력 속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최고의 국가발전 전략이라고 했다. 개헌안에 담긴자치분권의 쟁점별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대통령발의 개헌안을 두고 권력분산과 지방분권형 헌법개정이라 할 만큼 자치분권에 관한 상당한 내용이 포함돼 있던 것은 사실이다. 비록 대통령발의 개헌안이 국회 표결에 부쳐지지 못했지만 자치분권형 헌법개정을 기대하는 지역의 관심은 뜨거웠었다. 따라서 개헌추진이 무산되면서 개헌안의 취지를 살린 제도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대통령의 추진 의지가 여러 차례 언급되면서 지방이양일괄법은 다시 한 번 추진 동력을 갖게 됐다.

이에 더해 2018년 5월 18일 지방이양일괄법안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다루는데 여·야 대표가 합의함으로써 일괄법 제정 추진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지방이양일괄법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의 권한으로 지방이양하는데 수반되는 법률 제·개정사항들을 하나로 묶어 일괄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법안 형태다. 지방이양일괄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이 법안에 담긴 개별법률의 제·개정이 추진되고 사실상 일괄법 자체는 제 역할을 다하고 소멸하는 법이기도 하다.

국회에서는 1976년 ‘부가가치세 실시에 부가가치세 실시에 따른 세법조정에 관한 임시 조치 법안’에서 11개의 법률이 일괄 처리되는 등 그동안 총 5차례에 걸쳐 일괄개정 방식의 법률안을 개정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5번의 사례 모두 지방이양일괄법안과 같이 교육, 환경, 교통, 해양, 복지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친 개정사항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이렇게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는 지방이양일괄법안을 마련해 추진하는 배경에는 △지방이양의 효과 극대화 △사무의 이양에 따라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수행인력 증원과 비용부담 지원 등을 포함하는 행·재정적 지원 △소관 부처의 자발적인 지방이양 추진을 기대하기 어려움 등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이양일괄법안의 논의 과정.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지방이양일괄법안을 회부하는 데 여·야 대표가 합의한 1주일 뒤, 2018년 5월 25일 자치분권위원회는 청와대 자치분권비서실, 행정안전부, 법제처와 일괄법과 관련된 19개 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일괄법 제정 필요성과 추진일정 등을 공유하는 회의를 개최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를 시작으로 자치분권위원회는 2012년까지 지방이양이 확정됐으나 현재까지 미이양된 사무 중에서 시행령·시행규칙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무와 국회에서 부결된 사무 등을 제외한 598개의 사무(19개 부처소관, 100개 법률)를 대상으로 한 지방이양일괄법안 마련에 착수했다. 위원회 안에‘지방이양일괄법안 마련을 위한 TF’설치해 19개 부처를 대상으로 한 면담을 실시했다. 지방이양일괄법안에 포함될 지방이양 사무는 10여 년 전에 이양이 확정된 사무도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에 법안을 마련하기에 앞서 부처 면담을 통해 지방이양 추진이 불가한 상황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말부터 1개월 동안 19개 부처를 대상으로 한 면담과정은 지방이양 기능 하나를 놓고도 자치분권위원회와 해당 부처 간에 5, 6차례에 걸쳐 논의를 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이렇게 부처와의 논의와 자치단체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마련된 지방이양일괄법안은 2018년 7월 5일 자치분권위원회의 본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행정안전부로 이송됐다.

이후 행정안전부에서는 입법예고와 관계기관 의견조회, 법제처 심사를 거치고 최종적으로 국무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 2018년 10월 26일 ‘중앙행정권한 및 사무 등의 지방 일괄 이양을 위한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등 66개 법률 일부개정을 위한 법률안’(지방이양일괄법안) 을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에 제출된 지방이양일괄법안은 총 571개 지방이양 사무가 담겨있었고 19개 부처 중에서도 해양수산부 135개, 국토교통부 120개, 환경부 72개 등으로 3개 부처의 사무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상회했다. 지방이양일괄법은 10월 2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회부됨과 동시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등 12개 관련 상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후 당초 일괄법안에 포함해 국회에 제출한 571개 지방이양 사무는 국회 상임위별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400개의 지방이양 사무가 최종적으로 지방이양일괄법에 반영됐다. 상임위원회 중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가 99개 사무 중에서 5개 사무만 지방이양을 수용해 상임위별 수용률이 가장 낮았다.

이처럼 지방이양일괄법안은 12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약 8개월 동안의 심의과정과 운영위원회의 운영개선소위원회에 상정된 후 또 다시 8개월간의 기다림을 거쳐 2019년 11월 29일 운영위원회 의결, 2020년 1월 9일에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의 의의와 주요 내용.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은 사실상 16년 만에 이뤄낸 값진 결과로 그동안의 지방이양 추진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부에서는 지방으로 이양되는 400개 사무의 규모에 비해 이렇다 할 내용이 없는 것 아니냐는 실망스러운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기존 개별 법률 중심의 이양방식에서 벗어나 일괄개정 방식으로 지방이양이 된 첫 사례라는 자체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 개별 법률의 개정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일괄이양 방식은 실제로 지방분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일괄법 제정방식의 선례에 따라 향후 지방이양 또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과 관련해서도 일괄법을 추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지방자치와 분권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본원칙과 추진과제 등을 규정하고 있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은 위임사무는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국가의 권한과 사무를 자치단체에 포괄적·일괄적으로 이양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데, 자칫 선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특별법의 실효성을 다시 한번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지방이양의 추진과정과 방식에 있어서 다소 소극적이었던 중앙부처로 하여금 강력한 지방이양의 추진의지를 확실하게 되새길 수 있었던 점도 긍정적 효과라 할 수 있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방자치 이전의 한국의 행정은 지자체를 포함해 관치·집권형 혹은 폐쇄·독선형이었기 때문에 수준이 높아진 시민활동 혹은 민간단체 ·기업 활동과의 협업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상적으로 네트워크형의 열린 행정에서 공무원들이 적응되지 않으면 재난 재해 시에 잘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각종 재난 등의 위기상황에 대해 시민으로부터 출발하는 자치·분권형의 행정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정치·행정자체가 순간에 마비될 수도 있다. 따라서 관치·집권형 행정으로부터 자치·분권형 행정시스템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이번 코로나 위기 극복과정을 통해 확인한 교훈이며,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국가적 과제임이 분명해졌다.

자문 : 대통령직속 자치분권위원회 전문위원 이수영

이기동 기자
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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