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가축의 활용은 세계사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류의 식량원일 뿐만 아니라 이동 수단과 전쟁 무기가 되었고, 신천지 개척의 첨병이기도 했다. 신속한 정보 전달로 역사의 무대를 견인한 으뜸 주역이자 사람과 동고동락한 동반자다.

속명이 라틴어 ‘에쿠우스’인 말의 등장으로 인류사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다. 속도의 개념을 인식하면서 동서양 판도는 격렬히 요동쳤다. 다양한 집단을 형성한 기마 유목민은 유라시아 대륙의 지형을 흔들었다. 특히 발군의 기동성을 갖춘 흉노와 몽골은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중국은 물론 유럽사 대혼란을 야기했다.

인간은 수천 년 세월 동안 육상의 도구로 말과 수레를 이용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속도의 한계에 갇혔다. 한데 이런 장애를 극복하는 장치가 마침내 발명됐다. 그것은 바로 기차다. 19세기 초엽 영국의 스티븐슨은 증기 기관차를 만들고 시운전에 성공했다.

마필의 시대에서 철마의 시대로 바뀌면서 문명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1829년 영국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에 최초로 상업용 레일이 개설됐고, 이후 미국과 프랑스로 신속히 보급됐다. 당시 시속 40km로 달렸다. 탑승한 유명 여배우는 외쳤다고 한다. 날아가는 듯 빨랐다고.

해외여행을 다니노라면 기차를 탑승할 경우가 많다. 나에겐 중국 군인과 함께한 특별한 추억이 있다. 재작년 완공된 시안∼란저우∼우루무치 운행 2300km 고속철. 실크로드를 질주하는 창안(장안)호 열차에서다.

고대 중국 13개 왕조가 도읍한 산시 성 시안에서 신장 우루무치로 가고자 철마에 올랐다. 일박 이일 25시간 걸리는 여정. 요금은 770위안이니 대략 13만 원이 넘는다. 참고로 중국 화차는 좌석 등급이 네 가지로 구분된다. 경좌·연좌·경와·연와로 비행기처럼 철저한 자본주의적 공간. 우리가 예약한 4인실 침대칸은 연와에 속한다. 한데 하룻밤을 동석할 인연은 중국군 둘이다.

선반엔 커다란 더블백이 놓였고 실내엔 땀내가 물씬했다. 약간은 긴장된 맘으로 인사를 건넸다. 하나는 장교이고 다른 하나는 사병인 듯하다. 진초록 운동복 차림새. 영어 소통이 안 되니 교감은 어렵다. 그들은 시끄럽게 얘기를 나눴다. 또한 끊임없이 음식을 먹어 댔다. 두발 상태가 엉성한 병사가 불려와 뭐라 고함지르며 혼쭐이 나기도 한다. 왠지 민망하고 불안한 장면들.

차창 밖 풍경은 오롯이 기억에 남는다. 황허 상류 오아시스 도시인 깐수 성 란저우를 지나면서 고비 사막이 펼쳐진다. ‘고비를 넘는다’는 우리말 표현이 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고비 사막에서 유래한다.

사구와 돌산만 황량한 벌판엔 여름 별밤도 모래바람도 낙타 혹도 보이지 않으나, 여명의 황금빛 일출은 환상적 풍광이다. 이따금 스쳐 가는 대단위 풍력 발전소 풍차들.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의 신장에 들어서면 철로변 양쪽으로 시멘트 방벽이 이어졌다. 아마도 테러를 막는 담벼락인 듯하다. 이스라엘 분리 장벽이 연상됐다.

오는 6.28은 ‘철도의 날’이다. 코레일 경영 공시에 의하면 임직원 숫자가 3만2000명 넘는 거대 조직이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물류의 대동맥 역할을 수행한 기여가 컸다. 경주마처럼 빛나는 선두가 아니라 뒤에서 묵묵히 경제를 떠받친 조력자. 영주에 있는 경북지역 본부장과 모임을 같이하면서 대화가 잦았다. 내가 근무한 은행과는 확연히 다른 직장 문화. 관리자 입장에선 노조가 엄청 힘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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