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남북관계가 악화일로(惡化一路)의 길을 걷고 있다. 대남관계 단절을 넘어 아예 끝장내겠다는 태세다. 지난 15일 남한 정부는 대북특사를 제안했지만,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 의해 단박에 거절당했다. 북한은 6월 16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17일 개성공단과 비무장지대에 군사배치와 더불어 군사훈련을 예고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있지만, 정곡을 찌르는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남한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강 대 강 대치의 자제가 우선이다. 그리고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을 분석한 후 장기간에 걸친 전략을 짜야 한다. 북한의 도발 행위는 대북전단 같은 특정한 기간에 발생한 특정한 사건이 원인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남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강공과 같은 수준으로 남한이 대응하면 안 된다. 우려스럽게도 남북한은 서로 치고받고 있다. 청와대는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강력한 대응’을 경고한 상태다. 국방부는 ‘군사도발에 대한 응징’을 예고했고, 통일부는 ‘북한 책임론’으로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부에 ‘북한의 추가도발에 단호한 대응태세’를 주문했으며, 통합당은 ‘무력 응징’을 넘어 ‘핵무장’까지 거론한다. 일방의 적대적 행위가 상대방의 대칭적 반작용을 불러오고 이들이 상호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갈등이 분쟁을 거쳐 전쟁으로 상승한다. 전자는 ‘거울 이미지(mirror image)’이고 후자는 ‘전쟁발발과정’이다. 남한의 강경한 대응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나 무력충돌로 이어지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둘 중 하나가 멈추어야 상대도 멈춘다. 형이 먼저 멈추어야 한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대북전단의 확증편향(確證偏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인분석이 잘못되었으므로 합리적 처방이 나올 수 없다. 국가의 행위는 국제구조와 국가이익에 의해 결정된다. 현 국제구조는 중·미 간 갈등이다. 중국은 북한의 이념적 종주국이며 경제적 의존 상대다. 중국 편에 서서 남한을 적대시하는 행동은 당연하다. 미국의 중국 압박 작전으로 구상한 G7 확대기구에 참여 선언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국가이익의 측면에서 북한은 남한의 덕을 본 게 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런데도 현 정부 시기에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이 4건이나 나왔다. 3차례의 북·미 간 정상회담도 있었지만, 북한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현실적이고 가능한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특사 파견이나 정상회동은 빵깨이(소꿉놀이) 같은 제안이다. 북한이 거부하겠지만, 받아들여도 구조적 제약을 극복할 수 없고 북한의 국가이익을 만족시킬 수 없다. 독자적 남북경협으로 국민을 현혹해서도 안 된다. 북한으로 현금반입을 막는 안보리결의안 2270호, 대북 금융지원을 금지한 2321호, 대북합작사업을 막는 2375호, 기계 전자 운송기기의 북한 반입을 금지한 2397호가 풀리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가능한 사업은 사회단체 혹은 UN을 통한 인도적 지원이다. 더불어 미국의 독자적 혹은 UN 안보리의 북한에 대한 추가제재를 막아야 한다. 미·중 관계 회복에 대비하여, 중·소 및 다른 안보리 이사국들과의 협력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거나 북미회담을 성공시킬 로드맵을 짜야 한다.

현실인정이 출발점이다. 현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과거를 기준으로 잡으면 혼란이 있고, 그만큼 해법을 찾는 기간이 늘어난다. 남한 정부가 헤매고 있는 사이 6월 17일 미국은 기존에 존재하던 6건의 「대북제재 행정명령」의 효력을 1년 더 연장해버렸다. 이것만 막았더라도 북한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졌을 것이다. 정부가 머뭇거리면서 합리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처럼 좋은 기회가 자꾸 날아가 버린다. 무엇보다 대북정책에는 국민이 뒤를 받쳐 주어야 한다. 국민이 좌우로 분열되지 않고 정부를 지지하도록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북한이 적이 아니라 통일의 동반자라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내보내야 한다. 민주평통과 같은 헌법기관 및 민화협 같은 민간통일기구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면 효과는 증폭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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