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 수필가·전 상주문화회관장
김종한 수필가·전 상주문화회관장

모든 사람들과 같이 어릴 때는 부모님의 우산 속에서 자랐고 사춘기에는 공부하느라고 학교에 살았다. 나도 졸업하여 취직하고 결혼도 했다. 자녀도 출산하여 키우고 뒷바라지하여 요즘 별 따기보다도 힘든 공직에 취직도 시켰다. 부모의 내리사랑이 비바람 풍파를 막는 우산이 되어 대물림한다. 천하에 만물을 해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정상적인 부모의 본심이다. 앞만 보고 먹고 살기 위해서 살았다. 정신없이 매달리다 보니 먹고 살찌우는 몸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좋은 음식을 원대로 먹어도 배는 차지만 뭔가 허전하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은 밥만 먹고도 잘 사는 줄 알았다.

우리가 성경이나 성모당 미사에서도 ‘영원한 생명’이란 말을 귀 따갑도록 듣고 보고 알고는 있지만 의문도 간다. 사람은 육신이 배고프다고 밥만 먹고는 살면 동물과 같다고 한다. 혼의 양식도 먹어 동물과 다른 짐승이 아닌 인간이 된다고 한다. 기도하고 참선하는 ‘마음의 밥’인 생명의 양식도 혼도 먹어야 동물적인 욕망이 조절되어 인간이 구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어릴 때 밥만 먹고 잠만 자고 빈둥거리며 놀면 아버지의 불호령 소리가 떨어진다. “귀하고 비싼 밥만 축내고 할 일 없이 자는 개·돼지처럼 되지 말고 청소하든지 책을 보던지 일을 하며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고 하신다. 지금 생각하면 숨이 막히도록 잔소리하는 부모님의 성화가 인간이 되라는 인성교육이다. 옛날에는 라디오밖에 없으니 부모님이 인터넷이고 스마트 폰이다. 나태하면 게으름 피운다. 2천 년 넘는 성경역사에서도 게으름도 큰 죄란다.

사람의 형태는 몸과 혼 2가지로 구성된다. 몸인 물질의 육체는 보이며 형체가 있으나 혼은 마음과 정신으로 형체도 없고 보이지 않는 이승을 초월하며 오고 간다. 인간의 사망은 육체에 숨 떨어지는 절반의 죽음이다. 혼은 시공을 떠돌아다니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종교철학 이론이다. 우리는 미천하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죽을병에 걸리거나 세계로 번지고 유행하는 코로나로 저승 문턱에 들어서면 누구나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두 손 모아 ‘하느님’을 찾고 ‘기도해 주께’ 위로하며 안정을 시킨다. 모두가 후세 하늘나라를 믿기에 육체적인 죽음공포에서 초연해지는 담력이 생기는 것 같다.

짐승의 혼은 각혼으로 죽으면 사라지고 없지만, 인간의 몸에는 하느님을 닮은 영혼이 있어 육신이 죽으면 혼은 몸에서 빠져나간다. 무엇을 할 때도 육신과 혼의 의견일치도 되지만 엇박자도 난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 바닥에 떨어진 만 원짜리 지폐가 보고는 주얼까? 말까? 육신과 마음에서 두 선택의 갈등이 시작된다. 일단 줍는다면 밥값은 해결되어 육신은 배고픔은 해결되지만 양심에 찔리는 행동으로 마음인 혼이 아프다. 죄는 바로 양심에 찔리는 행동을 하면 생기고 누적되면 꼬리가 길어 밟히어 갈 곳은 감옥이다.

우리 몸 안에 혼이 있기에 숨 쉬며 산다. 육신의 손이 돈을 주어라고 하면 마음에 찔리는 행동으로 안 된다고 하느님이 영적인 계시 십계명에 위배되어 영원한 생명의 길 걸림돌이다. 육신만 편하자고 마음에 찔리는 행동을 자주하면 죄를 지어 벌을 받아 영혼의 구원을 못 받는다. 양심에 따라 처신하며 회개하는 사람이 생명의 양식을 먹는다. 죽음과 같이 사는 코로나 시대 우리 모두 육신도 밥도 먹고 마음의 밥도 먹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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