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현실보다 더한 소설은 없다.” 소설가들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 말을 실감합니다. 소설은 결벽적으로 인과관계를 강요하기 때문에 두서없이 이루어진 실제 경험들을 포용하지 않습니다. 소설 안에 그런 것들이 들어오면 빈정대거나 아예 무시합니다. 제가 젊어서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나 주인공 소설’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진짜 쓰고 싶은 것들을 제가 가진 소설의 틀로 담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스스로 ‘새로운 틀’을 만드는 자들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자전(自傳)을 표방하면서도 ‘있는 그대로’를 쓰지 못해 아무런 위로도 보상도 되지 못하는 글쓰기를 계속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굳이 소설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형식에 구애됨 없이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자가 바로 작가다.” 그 한 줄만 생각합니다. 잠에서 깨면 의무적으로 노트북을 켜서 자판을 두드립니다. 소설이 소가진설(小家珍說·작고 진기한 이야기)이라는 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니 무슨 글이든 제 손을 거쳐서 나오는 것들은 다 제 소설입니다. 가급적이면 ‘있는 그대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된 데에는 20세기 최고의 자연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인류학자 로렌 아이슬리의 자서전이 큰 도움을 줬습니다.

“나는 이것이 눈 내리기 전 인간의 가을 풍경이라고 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녹슨 심장 속 용수철이 부서지기 전에 그리고 꿈, 기억 및 그것들을 담고 있는 그 애매한 화학 영역이 회복 불가의 산산조각으로 날아가 버리기 전에 자신의 삶의 의미를 가지런히 해보려는 개인의 마지막 시도다.”(로렌 아이슬리, 『그 모든 낯선 시간들』)

그는 자서전을 “산산조각으로 날아가 버리기 전에 자신의 삶의 의미를 가지런히 해보려는 마지막 시도”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는 한 줄의 가감(加減)도 없이 자신의 일생을 ‘가지런히’ 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를 괴롭힌 질병과 가난과 폭력들을 낱낱이 기록합니다. 혹독한 세상과의 불화를 견디며 훌륭하게 한 사람의 시민으로, 학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줍니다. 그에게 세상은 안온하고 평화로운 안주(安住)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끄럽고 더럽고 사나운 곳이었습니다. 언제든지 멀리 떠나야 할 장소였습니다. 재취(再娶)로 들어온 어머니는 밖의 소리를 잘 듣지 못했습니다. 귀도 안 들리고 마음까지 닫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이웃들과도 늘 불화했습니다. 하나뿐인 자식마저 “제가 죽으면 어머니 무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묻히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철물상을 하면서 아마추어 배우로 활약했던 아버지는 예술적 감성은 물려주었지만 따듯한 혈육의 정은 나누어주지 않았습니다. 의식불명으로 오랜 기간 누워있던 아버지는 멀리서 형이 왔다는 소리를 듣자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해서 그의 손을 잡고 죽습니다. 늘 곁에 있던 배다른 동생에게는 그게 상처가 됩니다. 그 모든 것이 그가 앞으로 대면할 ‘그 모든 낯선 시간들’의 전주곡이었습니다.

『그 모든 낯선 시간들』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생(生)은 우주가 남긴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가지런히’ 하는 방법이 꼭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로렌 아이슬리의 방법도 있고 또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필요한 방법으로, ‘오늘 아침에도’, 글을 쓰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으려면 그 길밖에 없으니까요.

“...아가야, 내 사랑하는 아가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살아있었더라면 지금의 나처럼 될 수 없었을 거야. 그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잖니? 아기를 갖고 동시에 이 세계를 경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를 내보낸 곳이 바로 이 세계이기 때문이란다.”(밀란 쿤데라,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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