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조선 중기 명종 때 퇴계와 학문에서 쌍벽을 이뤘던 남명(南溟) 조식(曺植) 선생 이름이 초여름 한더위를 더욱 덥게 달구고 있다. 발단은 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이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명 선생은 조국 교수의 선조”라고 한데서 발단이 됐다. 남명의 13대손이 이 소식을 듣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을 조식 선생과 연결 지으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황 최고위원은 “조식 선생은 조국 전 장관의 직계 선조는 아니며…“라고 말을 바꾸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曺’씨는 국내에 창녕‘曺’씨 뿐이기 때문에 모두 남명 조식 선생의 후손이 되는 셈”이라고 두둔하고 나섰다. 창녕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은 조식 후손이 아니라 시조 조계룡(曺繼龍)의 후손이라고 해야 옳다. 창녕 조씨는 밀직사공파 등 28개 파가 있으며 남명도 이들 파 중 1개 파손(派孫)에 포함된다. (조씨 성 중 창녕 이외 본관을 둔 조문(曺門)은 남평, 가흥(진도), 능성, 수성, 안동, 영암, 장흥, 청도 조씨 등 8개 문중이 있다)

황 최고위원은 지난 3월에도 “‘조’를 생각하면 조선 중종 때 개혁을 추진하다 모함을 당해 기묘사화의 피해자가 된 조광조 선생이 떠오르고 ‘대윤’, ‘소윤’하면 말 그대로 권력을 남용하며 세도를 부리던 윤임, 윤원형이 생각난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을 조광조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윤임, 윤원형에게 빗댔다. 당시에도 한양 조씨 대종회에서는 ‘망언’이라는 반발이 나왔고 문중에서 “말에는 정도가 있다”며 “황희석은 정암 선조와 한양 조씨 문중을 모독한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라”고 요구 했다.

남명 조식(1501∼1572)은 당파 싸움으로 나라가 만신창이가 된 명종 1555년에 왕이 단성현감으로 제수하자 목숨을 내어 놓고 사직 이유를 밝히며 올린 유명한 단성소(丹城疏)가 있다. 지방 현감 자리에도 부적격자라며 결사코 왕의 교지를 물리친 남명 같은 올곧은 선비가 있는가 하면 문재인 정부 제2기 내각 구성 때 장관 후보자들이 국회 청문회서 부동산 투기, 꼼수증여, 황제병역, 위장전입, 자녀 이중국적, 북한 편향 발언 등 별의별 탈법과 도덕적 이탈 등 비리가 드러났으나 사퇴하는 자는 없었다. 문 대통령은 상황이 이런데도 이들에게 장관 임명장을 주었다. 비록 시대는 다르나 공복에 임하는 자세가 남명과 이토록 다를 수가 있나. 이 시대 이 나라 국민이면 한 번쯤 읽어 보아야 할 남명의 우국충정 어린 단성소 일부를 소개한다.

“…전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없어지고 민심도 이반 되었습니다.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워 손 쓸 곳이 없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들은 아랫자리에서 술과 여색에만 빠져있고 높은 벼슬아치들은 윗자리에서 뇌물을 받아 재산 모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장육부가 썩어 뭉크러져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습니다. 내직의 벼슬아치들은 자기네 당파를 심어 권세를 독차지하고 외직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백성 벗겨 먹기를 마치 여우가 들판에서 날뛰는 것 같습니다.…신이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대비(문정왕후)께서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 하나 깊은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니 다만 돌아가신 선왕의 한 고아(嗣子)에 불과합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백성들의 울음소리는 구슬퍼 상복을 입은 듯합니다. 나라의 존망이 전하께 달려 있습니다. 임금으로서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이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됩니다.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상소로 아뢰나이다.…”

2020년 6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민은 이념으로 두 쪽으로 쪼개지고, 백수가 된 젊은이들은 넘쳐나고, 영세 사업자와 자영업자들은 도산의 불안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로 서민들은 바이러스 공포로 생활이 위축되고, 기업들은 경기 부진 속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친정부 공기업들은 적자경영에도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강남의 부유층은 넘쳐나는 돈더미로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세월 가는 줄을 모르는 이 현실이 남명이 살았던 450여 년 전과 별반 달라져 보이질 않는다. 이 난국을 어찌해야 하나.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