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소위 사(士, 師, 事)자 전문직업군에서는 “늙은 말에게 길을 묻는다”라는 격언이 비교적 존중되는 편입니다. 그만큼 그 직역에서는 경험과 경륜이 중요하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민주화 시대를 맞이해서 그런 영역에서도 수장(首長)을 선거로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대학의 장(長)’이나 ‘…협회장’ 같은 자리는 구성원들의 직선으로 결정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직선제’는 늘 아슬아슬합니다. 대의나 명분보다는 표를 가진 사람들의 ‘이익과 편의’에 의해 좌우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문직 직선제 유권자들의 일반적인 심리성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나 잘났다’와 ‘이익이 있는 곳에 진실이 있다’입니다. 그러니까 ‘나보다 잘난 이’와 ‘나의 이익에 배치되는 것’은 선택에서 배제될 때가 많습니다. 그저 “나 못났습니다~”라며 굽신대거나 “반드시 이득을 드리겠습니다~”라며 표를 사는 곳으로 표가 쏠립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형 인물이 당선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당연히 그 주변 참모나 실무진들도 공익(公益)이나 미래를 보지 못해 좌충우돌, 천방지축일 때가 많습니다. 비효율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크게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기가 십상입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안정된 삶을 누리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선거가 일반 대중 선거보다 훨씬 더 동물적일 때가 많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KBS 명작다큐] <차마고도는 이렇게 촬영되었다!>를 봤습니다. 차마고도(茶馬古道) 본편이 방영될 때도 드문드문 감명 깊게 봤습니다만 그 촬영과정을 담은 영상도 그에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차마고도는 높고 험한 산맥을 넘어 티베트와 교역하던 중국의 옛길을 말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이며 이 길을 따라서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서로 오갔습니다. 실크로드와 함께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로 꼽히는 이 길은 중국 서남부의 윈난성(雲南省)· 쓰촨성(四川省)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험난한 육상 무역로입니다. 차와 말을 교환했다고 하여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만 워낙 험난한 지형이라 그 길을 넘어 이루어지는 교역이 큰 이익을 남겼습니다. 큰 이익만큼이나 위험도 컸던 ‘생사를 넘나드는 길’이었습니다.

차마고도를 따라서 전개되는 이번 영상에서는 천 길 낭떠러지 외길을 조랑말에 짐을 싣고 하염없이 줄지어 걷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위대한 자연의 품 안에서 인간이나 여타 동물이나 모두 한갓 미물(微物)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을 부리는 특별한 재주를 타고 났습니다. 그 재주에 의지해, 그들과 함께,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어려운 일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냅니다. [KBS 명작다큐] <차마고도>는 그런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협업을 세밀하게 기록한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는 작품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기록 과정이 꼭 아름다운 장면들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말들이 좋은 초지를 찾아서 무단으로 산을 넘어가는 일도 있었고, 경험 없는 조랑말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져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간의 일로 착하고 무던한 동물의 생사가 그렇게 한순간에 갈렸습니다. 자신들의 짐에다가 철가방에 담긴 무거운 촬영장비까지 지고, 때로는 사람까지 태우면서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목적지까지 무사히 임무를 완수한 마지막 마방(馬房)의 조랑말들에게 늦게나마 멀리서 박수를 보냅니다.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협업, 우리가 지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젊을 때는 의욕에 넘쳤지만 멀리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경험이 일천했고 경륜을 쌓지 못했습니다. 힘에 부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아슬아슬하게 낭떠러지 길을 지나다녔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저도 행렬의 앞을 걷는 ‘늙은 조랑말’이 되었습니다. 허락된다면, 한 명의 구루(guru·인생의 교사)로서 제 남은 생을 다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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