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위주 교육과 달랐던 고교시절…과학적 사고방식 몸에 배

주시형 전남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가 2015년 인문·사회 과학 우수성과 교류회에 참석해 ‘인공물의 진화’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과학 기술’은 국가산업의 경쟁력이자 국력의 원천이다.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는 경북일보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과학 정신’을 정립하고 기초 과학이 국부 창출 원천이 되도록 각 분야 권위 있는 과학 인재와 대담을 통해 한국 과학이 나아갈 길을 묻고 모색하고자 한다.

이번 주인공은 포항 소재 경북과학고등학교 2기 졸업생인 주시형(42)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다.

주 교수는 카이스트(KAIST) 산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과정 석사 및 박사를 졸업했다.

이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KITECH) 기술정책실 연구원,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과정 계약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전남대 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기업이나 정부 기술개발과 관련한 경영학·경제학적 연구 분야인 기술경영·기술정책 전공으로 연구 업적을 쌓고 있다.

다음은 주 교수와 1문 1답.



△경북 또는 포항과의 인연은.

-경주에서 태어났고, 월성중을 졸업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박물관과 유적지를 많이 다녔다. 과학실험 경시대회 준비를 하면서 과학 분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거의 1년 동안 매일 수업이 끝나면, 저녁 6시까지 과학실에서 실험을 하며 보냈다. 지금은 퇴직한 대구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지낸 이태열 선생님께서 지도해 주셨다.(졸업하고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는데,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중학교 때 물리경시대회 준비를 하면서 물리에 특히 흥미를 느끼게 됐다. 영어도 좋아해서, 외고와 과학고 중 진로를 고민했었는데, 마침 중학교 1년 선배인 고석만 선배가 경북과학고 1기로 입학하는 것을 보고, 과학고로 진로를 결정했다.



△경북 과학고에서 배운 것은.

-고교 공부는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과학고의 교육은 그 당시 많은 고교의 입시 중심 교육과는 달랐다. 선생님들께서는 체계적·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과 자연 현상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강조하셨다. 사람의 사고방식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닌데, 과학고에서의 교육을 통해 보다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몸에 배게 할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그리고 헌신적으로 지도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뛰어난 선후배와 친구들이 많은 것도 도움이 크게 됐다. 가끔 낙망할 때도 있었지만, 동기부여도 됐고, 실제 친구들의 접근법,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주시형 전남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앞줄 오른쪽)가 지난 2008년께 학위 수여식에서 기념촬영 하는 모습.
△교수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고교 때에는 막연히 ‘교수’라는 직업을 꿈꿨지만, 대학교, 대학원을 거치면서, 교수라는 직업을 갖는 것은 실제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을 알게 됐다. 구체적으로 교수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계속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직업을 희망했다. 연구소·학교 등에 다양하게 지원하던 중 운 좋게 대학에 자리를 얻게 됐다.

주시형 전남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가 지난 2013년께 진행한 한 프로젝트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설명과 특별한 연구 성과, 성취가 있다면.

-나의 전공은 기술경영, 기술정책이다. 생소한 분야일 수도 있는데, 기업이나 정부의 기술개발과 관련한 경영학적, 경제학적 연구를 하는 분야다.

아직까지 내세울 만한 연구 성과는 없지만, 굳지 꼽자면 ‘인공물의 진화’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컴퓨터, 자동차, 휴대전화와 같은 사람이 만든 물건(인공물)의 형태·기능·성능 등이 변화하는데, 생물의 진화와 유사하게 이러한 인공물의 변화에 어떤 규칙 또는 패턴이 있는지 찾아보는 탐색적 연구였다. 여러 교수님과 같이 연구한 중간 결과를 ‘인공물의 진화’라는 책으로 펴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 포스트 코로나, 대학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기능과 역할 재정립에 대한 논의의 역사는 짧지 않지만, 그 진전은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현재 한국의 대학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이 더욱 명확히 대중들에게 공개될 것이라 생각하며, 이로 인해 대학 외부로부터의 변화에의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경직적인 측면으로 인해 사회의 요구에 맞춘 근본적 변화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향후 10년간 전 세계 대학의 절반가량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는데, 코로나19는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대학 학벌이 중시되는 한국에서는 그 영향이 더 클 것이다. 이렇게 사라지는 기존 대학의 빈자리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고등교육으로 대체될 것으로 생각한다.

주시형 전남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오른쪽)가 지난 2013년 국제기술경영학회(IAMOT)에서 발표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금의 연구를 계속하면서 이루고 싶은 결과물, 업적이 있다면.

-최근에는 실제 현상을 분석하는 실증연구보다는 통계학적인 연구 방법론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기존 모형의 한계를 보완한 일반화된 모형을 개발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방 R&D 인프라 활용 및 연구 방법은.

-경북 지역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국가 전반적으로 볼 때, 경제·산업 등 타 부문과 비교해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지방정부 및 지자체의 관심이 낮고, 과학기술을 지역 경제·산업 발전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방정부가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 등을 수립·추진한 지 오래됐지만, 아직 실질적 성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본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시류에 편승한 투자 및 지원 행태를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 과학기술 전략을 다시 수립하고, 역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시형 전남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가 2015년 인공물의 진화 워크숍에 참석해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초과학, 그리고 응용과학서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하려면.

-연구 현장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기술) 구분은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나의 연구에 기초적인 부분과 응용 부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별로 특성이 크게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다른 과학기술 선진국과 비교해 학문 분야의 다양성이 낮은 측면이 강하다. 상업성이 높은 분야에 인력과 지원이 집중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집중이 더 심각하다.

연구자들이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공계 후배들에게 조언을.

-과학사, 기술사, 그리고 과학기술자의 전기를 많이 읽어보면 좋겠다. 근대 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을 보면, 수학·과학·기술 그리고 사회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교과서들은 통상 ‘결과’를 중심으로 제시돼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발견과 발명이 이루어졌는지를 쉽게 공부하기 어렵다. 향후 연구자가 돼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을 하려 한다면, 과거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공무원이 대세인 시대, 안정적인 직장에 모두 몰두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는 개인을 탓하기보다는 사회적 차원에서 안전망 구축을 통해 개인이 보다 도전적인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장기적 측면에서 현재 안정적인 직장이 미래에도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안정적인 대부분의 직장을 포함해 머지않아 사회 전반적으로 고용 안정성은 지금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장기적인 트렌드를 고려해서 개인이 현명하게 진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부모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 또한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 저의 부모님들이 상상하지 못한 시대를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듯, 내 아이들 또한 내가 상상하지 못한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나 스스로도 과거와 현재에 아이들을 가두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다른 부모님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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