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배포한 이른바 ‘n번방’ 등 성범죄 사건 피고인에 대한 양형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대구고등법원이 최근 아동·청소년 이용 성 착취물 제작·배포 혐의로 기소된 20대에게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최근 디지털 성범죄가 이슈로 떠오른 이후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고법 제2형사부(박연욱 부장판사)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했다. 

A씨는 2018년 7월 5일 자정께 구미에 있는 주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중 B씨에게 "여자와 있는데 집을 빌려달라"고 했고, B씨는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촬영하면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A씨는 이날 새벽 4시~6시 사이 B씨의 빌라에서 여고생 C양(16)과 술을 마신 뒤 B씨 휴대전화로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했고, 페이스북, 텔레그램 등의 메신저에 접속해 지인에게 동영상을 전송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지난 2월 18일 "범행 도구를 미리 준비하는 등 사전에 계획해 범행했는데, 피고인이 계획적으로 범행했다는 사정은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정한 성범죄에 대한 집행유예의 주요 참작사유 중 부정적 사유에 해당한다"며 "아동·청소년의 건전한 정서적 발달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을 주는 반인륜적 범죄로서 비난 가능성이 몹시 크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범행의 대상이 된 피해 아동·청소년으로서는 자신을 보호해줘야 할 위치에 있는 남자 성인으로부터 기만당하고 성적으로 이용·착취당했다는 사실에 깊은 좌절감에 빠져 왜곡된 성적 가치관을 형성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자기 파괴적인 행동까지 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죄책을 깊이 뉘우치기는커녕 범행을 부인하다가 더는 변소를 유지할 수 없자 어쩔 수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크고 피해자는 정신적 충격과 불안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범행을 모두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는 점, 피해자와의 성관계 장면 촬영을 먼저 제안한 B씨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 받은 반면에 피고인은 원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돼 상당 기간 참회의 시간을 가진 점, 피해자와 합의를 위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점 등을 종합하면 원심의 형은 책임에 비해 다소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밝혔다. 

제2작사 보통군사법원(재판장 군판사 중령 이상재)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B씨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공범에게 피해자와의 성관계 촬영을 유도해 범행에 이르렀고, 피해자가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점 등에 비춰보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면서도 "범행에 대해 모두 자백하며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전성규 (주)한국심리과학센터 이사는 "최근 춘천지법에서 중형(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받은 이른바 ‘로리대장태범’ 일당과 매우 대조되는 형량"이라면서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는 비판에 부합하는 선례로 남게 돼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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