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1962년 존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은 자국 수상자들을 백악관에 초대하는 행사를 열었다. 펄 벅 여사도 케네디 대통령 옆자리에 앉아 케네디와 대화를 나눴다. 케네디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죠?” 라고 물었다. 펄 벅 여사는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케네디가 “한국은 골치 아픈 나라인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를 시켜야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은 그냥 이전처럼 일본에게 통제를 하도록 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고 했다.

그러자 펄 벅 여사는 “당신은 미국 대통령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일본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심한 말을 하시는가요? 지금 당신의 말은 미국이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로 돌아가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케네디는 이후 한국에서의 미군 주둔과 관련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펄 벅 여사가 이 말을 했을 때 얼굴엔 노여움으로 가득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펄 벅 여사가 한국인을 말할 때는 ‘배려심’이 많은 국민이라는 말을 꼭 덧붙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전후에 한국을 다녀보고 경험한 펄 벅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빈곤한 삶을 살면서도 한국인의 DNA에는 ‘여유와 배려’가 몸에 밴 국민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한국을 방문해 농촌 풍경을 스케치할 때 그녀는 60평생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후일 술회했다.

해질녁 무렵 농부가 볏단을 얹은 지게를 지고 빈 소달구지를 끄는 소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농부에게 “왜 소달구지를 타고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농부는 “저 소도 나와 함께 하루종일 일을 해서 지쳐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농부의 가축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심에 감복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또 감나무 꼭지 부분에 익은 감을 모두 따지 않고 몇 개씩 남겨 둔 이유가 “까치가 와서 먹으라고 남겨 뒀다” 라는 이야기에 또 한 번 감복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한국인’ 하면 ‘배려’의 말이 먼저 떠오르는 민족이었다. 우리는 콩 한 알로 열 조각을 내서 나눠 먹는 배려와 베풂의 민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 배려의 민족인 대한민국 국민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에서 전두환 군부독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역사적 독선의 정치가 펼쳐졌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고 자부하는 문재인 정부와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6월 29일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에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오만을 보였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3년만인 지난달 29일 집권 민주당이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 본회의를 열고 11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자당 소속 의원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지난달 15일 법제사법위원장등 6개 상임위원장 인선을 자당 소속 의원으로 선출한 민주당은 17개 상임위원장 모두를 싹쓸이했다. 국회부의장단의 협의를 거쳐 선임되는 정보위원장은 통합당 몫 부의장 선출이 무산되면서 공백 상태로 남겨졌다.

21대 국회가 출발부터 파행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여당이 법사위원장은 야당 몫으로 내려온 오랜 관행을 인정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린대서 비롯됐다. 법안 처리의 수문장 역을 하는 법사위원장 자리는 단순히 18개 상임위원장의 한 자리에 그치지 않는다. 국회 운영에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주어진 최소한 국정 안전장치이자 여야 협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지난 18대와 19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원장만큼은 야당 몫으로 넘겨 주었던 것인데 민주당이 단지 176석의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국회의 오랜 협치의 전통을 짓밟아 뭉개 버린 것이다. 군부정권 못지않게 대통령이 군림하는 권위주의적 암영(暗影)이 드리워지는 속에 ‘의회민주주의가 몰락하고 있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미래통합당은 “1987년 체제가 이룬 의회운영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의회민주주의의 조종(弔鐘)” 이라고 반발했다. 옛말에 “힘이 있을 때 아량을 베풀어라”고 했다. 힘 있다고 약자를 억누르는 자는 자기보다 더 강한자로 부터 또다시 억누림을 당하는 악순환의 전철을 받게 된다는 역사의 기록이 말해 주고 있다. 역사를 배워 앞길을 밝히고 다가올 환난을 미리 막을 줄 아는 자만이 역사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앞 수레의 전복은 뒤 수레에겐 교훈’이라는 중국 전한시대의 고사성어를 집권당 위정자들은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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