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칼 표지.
천년고도 경주를 산책하며 사유한 묵직한 삶의 깊이를 전하는 경주 흥륜사 한주 법념 스님의 첫 산문집 ‘종이 칼’(민족사)이 출간됐다.

글쓰기 공부 7년째. 팔순을 바라보는 비구니 스님이 컴퓨터 자판을 칠 때마다 주위에서는 이제 그만하라고 한마디씩들 한다. 연말이 되면 ‘죽음’이라는 단어에 민감해지는 나이가 됐지만 법념 스님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 잘해내고 싶어진다. 천만 번을 죽은 들 어떠하겠는가. 좋은 글을 낳을 수만 있다면 겁날 것도 없다. 매일매일 글을 쓰면서 이제야 인생의 참맛을 느끼는 것 같다. 스님은 지금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다.

‘종이 칼’은 천년고도 경주를 산책하며 사유한 묵직한 삶의 깊이를 우리와 공유한다. 경주 흥륜사 한주 법념 스님의 첫 산문집 ‘종이 칼’은 스님의 일상과 기억 속에 담긴 지금 우리들의 삶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녀는 여섯 살이었다. 영화의 고장 부산으로 피난을 가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놀림도 받았지만 바다가 있어서 영화가 있어서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던 날들이었다. 출가해서 공부하고 수행하며 열심히 살았다. ‘법념’이라는 법명은 발음이 힘드니까 다른 이름으로 바꿔 달라 큰스님께 투정부리던 젊은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덧 하루에도 수십 번씩 깜빡깜빡 건망증이 늘어난 노스님이 됐다. 그래도 아직 떠올릴 추억이 많아서 법념 스님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종이 칼’은 법념 스님이 보고 느낀 세상의 모습이다. ‘이 말은 왜 생겼을까?’ ‘여기에는 이런 지혜가 있었구나!’ 의심하지 않고 무심히 지내왔던 일들에 호기심을 보이고 속을 들여다보면서 ‘세상이 이렇게 재밌고 아름다웠구나!’ ‘옛사람들의 지혜가 여기에 있었구나!’ 아이처럼 감탄을 한다. 종이 한 장이 아무 힘이 없어 보이지만 그 종이에 쓰인 글이 금강보검과 같아 백팔번뇌를 다 베어낼 수 있는 것처럼, 법념 스님은 ‘종이 칼’에 담긴 글들이 누군가에게 그러한 힘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옛날에 한 아이가 있어, 내일은 오늘과는 다르리라 기대하며 살았습니다”라는 글로리아 벤더빌트의 시처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모든 날들이 희망으로 빛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 법념 스님은 1945년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란했다. 1963년 부산 경남여고를 졸업했으며, 1972년 혜해(慧海)스님을 은사로 불교에 입문했다. 1976년 수원 봉녕사승가대학을 졸업 후 15년 간 제방선원에서 안거,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 불교대학을 거쳐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강사를 역임했으며, 2013년 ‘동리목월’ 신인문학상으로 문단 추천을 받았다.

그 후 수필공모전에서 대상을 비롯해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향곡 큰스님의 생전 일화를 정리해‘봉암사의 큰 웃음’을 출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한편 취미로 자수를 즐겨 놓아 전시회를 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 경주 흥륜사 한주로 시간이 나면 꽃차를 만들어 즐겨 마시면서 글을 쓰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법의 향기를 나누어 주고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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