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걷다가 멈춰 서서 동서남북 풍광 음미 마음에 담으면 행복

개활지에서 마주한 팔공산 능선

가호 2리에 다시 왔다. 이곳에서 백학2 리를 거쳐 치산마을 돌담길로 이어지는 8.9㎞가 둘레길 10코스이다.

잠시 서서 바라본 가호리 경관

2주 전에는 마을 입구 표석에서 일정을 마무리 했지만 오늘은 자동차를 주차해 둘 겸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백학2리 이정목
가회2리 10코스 출발지

시작점과 끝 지점간 거리는 10㎞가 채 안 되지만 경북 구간에 들어서면서 교통편 연결이 어려워 시작점에 차를 두고 돌아올 때는 지역 콜택시를 이용할 때가 많다.

자연부락별 유래에 의하면 가호리는 구씨(具氏)가 400여 년 전에 개척하였다고 한다. 동림(東林)으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동쪽에 숲이 우거진 곳이란 뜻이고 고려 시대에 동림사(桐林寺)가 있었기 때문이란 설도 있다. 다행히 마을 위쪽에 동림지가 있어 개울이 마를 일은 없겠다. 옛날에는 개천마다 물이 콸콸 흘렀지만 요즘은 깊은 골짜기에도 물이 귀해 잡초만 무성한 경우가 많다. 사람도 수분이 부족하면 피부가 푸석해지면서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자연이라고 다를까.

가호2리 당산나무

 


당산 나무 앞 작은 다리를 건너 경사진 임도를 걸었다. 걷다가 멈춰 서서 잠시 풍경을 감상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산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참 많은걸 준다. 이 많은 걸 대가없이 누린다. 보고 듣고 향기를 맡고 만지며 호흡한다. 바람도 하늘도 공기도 모두 공짜다.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어선지 고맙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이렇게 들판에 홀로 서보니 귀한 줄 모르고 누려온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길은 솔숲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걸은 흔적이 적은 길은 잡풀이 수북하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야외활동이 현저히 줄었고 둘레길 자체의 매력은 갖췄지만 교통편이 불편하여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개활지를 찾아가는 것 역시 미로다. 길도 길이지만 이정목이나 표지기가 없다. 7월부터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된다. 공원이나 둘레길을 걸으며 건강을 찾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여행할 수 있었던 건 시나 군 등 각 지자체의 노력과 땅 소유주의 배려 덕분이다.

여러 번 헤매다 개활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밭 경작을 하고 계신 아저씨 한 분을 만났다. 둘레길 표식이 없어 찾기 힘들었다고 하자 “여긴 달성서씨 사유지예요. 군위군이랑 협의가 잘 안 된 모양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 중에 밤을 함부로 따고 산나물을 채취해 가고 나무를 통째로 뽑아가는 경우도 있답디다. 쓰레기도 버리고요.” 그가 덧붙인 말이다.

 

팔공산 시루봉과 더 멀리 비로봉과 동봉

가만히 서서 동서남북 풍광을 음미했다. 시루봉이 보이고 더 멀리 비로봉과 ‘동봉’, 서봉이 보였다. 유려한 능선은 포개지고 겹쳐져 장미꽃처럼 만개했다. 누가 팔공산을 저리도 예쁘게 접었을까. 제주의 초원을 연상시키는 드넓은 목초지에서 바라보니 그 느낌이 새롭다. 백두대간에서 힘차게 뻗어 나온 산줄기라 옹골차고 장대하다. 지금, 이 순간 아름다운 것을 조망하고 느끼고 마음에 담을 수 있어 행복하다. 훼손시키지 않으면 자연은 스스로 호흡하고 재활하여 끊임없는 재생산을 통해 우리에게 사계절과 갖은 먹거리를 제공한다.

개활지 새 쫓는 깡통

내려오면서 보니 농경지에 기다란 장대가 세워졌다. 꼭대기에 빈 깡통 수십 개가 달렸다. 바람이 불때마다 깡통이 서로의 몸을 치며 철커덩거렸다. 농작물에 접근하려던 새가 그 앞에서 주춤댔다.

백학리 버스정류장

산에서 내려와 신작로를 걸어 백학2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도로 건너편에 둘레길 이정목이 환대하듯 섰다. 백학리(白鶴里)는 삼국시대에 생겼는데 마을 입구에 흰 학이 많이 서식하는 백학암이라는 큰 바위에서 유래가 되었다. 자연부락으로 생겨난 백학리는 선녀가 마을에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어 선래동, 소하사란 절이 있어 윗마을은 소상, 아랫마을은 소하라 부르기도 했다.

치산고개
치산고개 정상

마을 뒤편 언덕길 따라 치산 고개로 향한다. 치산 고개 정상엔 산불관리 감시 CCTV가 있다. 산불 예방 수칙 안내방송이 나오고 카메라는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양옆으로 돌려가며 방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 촬영한다. 이 곳서 치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환상적이다.

개활지에서 바라본 팔공산 능선

개활지는 전망이 광활했다면 치산 고개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아늑함과 오묘함의 극치다.

마을 앞 산이 꿩이 앉은 모습이라 꿩산
치산마을 전경

마을이 왜 치산인지 궁금했다. 지명 유래를 찾아보니 마을 앞산이 꿩이 쪼그려 앉은 모양이라 되어 있다. 지금도 ‘꿩산’을 의미하는 ‘치산’을 딴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 그 예가 치산 계곡, 치산폭포, 치산리이다.

치산리 돌담길 따라
아름다운 길 &치산2리

이곳은 한밤돌담마을처럼 돌담이 많지만 분위기는 다르다. 봄철이면 아삭하고 향긋한 미나리를 먹으러 대구는 물론 포항과 부산에서도 찾아온다.

치산마을 입구, 캠프장 가는 길목
사과 과수원길 따라 마을로

벼와 밭농사를 짓고 모과가 유명하며 사과과수원도 많다. 마을에 자연재해가 없는 건 팔공산이 보호막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란다.

치산 산촌 빨래터
정겨운 빨래터

마을 중간에서 빨래터’라 쓰인 낡은 나무 푯말을 발견했다. 돌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할머니 한 분이 계셔 잠깐 얘기를 나눴다. “예전에는 좋았죠. 팔공산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이라 시원하고 달아요. 식수로도 사용했지요.” 집마다 수도가 들어오면서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할머니 가슴속 풍경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다. 수도가 고장이라 물 길으러 나왔다는 할머니 옆에 소주 한 병과 초를 켠 종이컵이 놓였다. 민간신앙에 기댄 소박한 기원, 누군지 모르지만 촛불에 켠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싶다.

치산 마을회관 옆 돌담과 접시꽃
주인을 기다리는 우편물

마을 회관 옆 화려한 접시꽃과 돌담의 조화가 예뻐 카메라에 담았다. 폐가 우편함에는 빛바랜 우편물이 수북하다. 주인은 떠나고 없어도 집은 그 집의 사람을 기다린다. 돌담이 무너지고 지붕에 이끼가 껴도 기다림은 녹슬지 않는다. 동구 밖 보호수 옆으로 개울물이 흐른다. 나무 그늘로 햇볕을 피해 찾아든 사람들이 쉼터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낮잠을 자고 개울에 발을 담갔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7월의 어느 한때를 살아내고 있다.

임수진 수필가
팔공산 둘레길 안내 지도

◇ 주변에 가 볼만한 곳

△팔공폭포(치산폭포·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 영천시의 서쪽에 있으며 치산2리 마을 앞에서 좌회전해서 길 따라 올라가면 된다. 치산 캠프장을 지나 계곡을 따라 쭉 올라가면 우측에 수도사가 나온다. 그곳서 약 1.5㎞ 쯤 더 올라가면 된다. 팔공산 자락에 있는 폭포 중 가장 낙차가 크고 유량이 풍부하다고 알려졌다. 대구에서는 팔공폭포라 하고 영천에서는 신녕면 치산리에 있다하여 치산 폭포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수도사와 인접한 곳에 있다하여 수도폭포라 부르기도 했다. <지명 및 유래 참고 문헌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팔공산이 보호막이 되어 주어 자연재해가 없는 치산리
치산마을 보호수
멀리 상주 영천 고속도로와 백학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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