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부터 11월 29일까지 테마전시실

영친왕비 당의(英親王妃 唐衣), 조선 20세기, 비단, 화장(가로) 138cm, 뒷길이(세로) 78.5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국립대구박물관이 4일부터 11월 29일까지 테마전시실에서 ‘우리 옷과 금박(金箔)’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테마전시는 국립대구박물관이 한국 전통 공예를 주제로 기획하고 있는 연속 전시의 첫 번째 주제이다. 화려하게 멋을 낸 조선시대 궁중 복식을 통해 한복에 표현한 금박의 문양과 기술을 소개하고, 금박 공예의 전통과 계승 과정을 살펴보는데 주안점을 뒀다.

전시품은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출품한 궁중 한복과 금박을 붙이는 데 사용한 문양판 등 모두 22점이다. 이 중 국가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의 작품 4점은 전시 후반 일정에 교체로 전시할 예정이다.

주요 전시품은 영친왕비 당의와 치마이다. 영친왕 일가족의 복식은 조선 왕실의 마지막 장인들이 남긴 작품으로, 당대 최고의 솜씨와 정성이 담긴 궁중 복식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문화재청은 영친왕 일가족의 복식이 조선 왕실의 복식사와 의장의례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265호)로 지정했다.

영친왕비 당의(唐衣) 궁중에서 평상시에 소례복(小禮服)으로 입는 옷이다. 옥색의 도류불수문단(桃榴佛手文緞)으로 지은 겹당의이며, 당의의 앞과 뒤 그리고 깃에는 ‘수(壽)’와 ‘복(福)’ 두 글자를 부금(付金)했다.

궁중에서 사용하는 도류불수문(桃榴佛手文)은 복숭아·석류·불수감(부처의 손을 닮았다는 불수감나무)무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으로, 각 과실의 꽃과 잎을 화려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대란치마, 조선 20세기, 비단, 전체 길이 141cm, 허리 105.5cm, 치마둘레 346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대란치마는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여성이 적의(翟衣)나 원삼(圓衫)등으로 예복 차림을 할 때 하의(下衣)로 갖춰 입는 옷이다. 치마를 장식하기 위한 스란단이 치마의 아래쪽에 2단으로 부착돼 있다. 스란단에는 한 쌍의 봉황이 보주(寶珠)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여백에는 구름이 가득한 운봉문(雲鳳文·구름과 봉황무늬)을 부금했다.

기록에 따르면, 옷에 금가루를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금박공예는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두품과 5두품 여인의 바지에 금니(金泥) 사용을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고(잡지2 색복),‘고려사(高麗史)’에는 문종 26년(1072)에 사신 편으로 송에 보낸 물건 목록 중 어의(御衣)와 황계삼(黃계衫) 등을 금박 장식한 붉은 비단 겹보에 싸서 봉했다는 기록이 전한다(세가 권8).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등 여러 기록에 금박일을 하는 업무(금박장, 도다익장, 부금장, 금장, 니금장 등)가 더욱 세세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우리 옷을 장식한 금박 공예는 오랫동안 신분과 부귀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화려한 궁중 복식으로 전승됐다. 금박 공예는 근대에 들어 기계로 금박을 만들고 복식 유행의 흐름이 바뀌면서 금박장의 역할은 줄어들어 부금장(付金匠·금을 입히는 장인)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용문 문양판(龍文 文樣板), 연대 모름, 나무, 지름 9.6~9.9cm, 높이 4.5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전시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명예 보유자의 작품도 함께 전시해 금박공예의 현대적 전승 과정도 엿볼 수 있다. 현재는 옷을 장식하는 금박 공예의 전통이 명맥을 잇는 정도이지만, 금박 공예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우리 한복 금박공예의 기술과 전통 그리고 역사적 의의를 되새겨보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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