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늦게 도착했다
살구나무에

살구나무 높은 곳에서 꽃들이
벌겋게
타들어가고 있다

나도 저런 적 있었지 옆에서
라일락이 쓰라리게 돋아나고 있다

한 발 늦는다는 건
부재를 부르는 것

살구나무는 재가 되어가는 마음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낸다


<감상> 한 발 늦게 도착해 그대를 만나지 못하듯, 살구나무는 벌써 꽃을 지우고 있었네. 감꽃과 밤꽃 중 어느 것이 먼저 피는지 보지 못하고 봄은 먼저 가버렸네. 한 발 늦은 것은 그대의 부재를 불러오지만, 한 발 먼저 간 그대는 속이 까맣게 탓을 것이네.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떠난 그대는 끝내 마음을 숨기지 못하네. 살구나무가 벌겋게 타들어 가는 걸 보면 집작할 수 있다네. 나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그대가 떠난 이유를 알 수가 없네.(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