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삶에는 순리가 있다. 순리가 곧 올바르고 정상적인 길이다. 올바른 길 그 순리를 저버리는 삶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아마도 닭똥 냄새를 맡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듯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 중에 닭똥 냄새와 다를 바 없는 몰지각한 몰상식한 언행을 듣고 또 보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히 잘 못된 사람이다.

우리 속담에 여든 살 먹은 할아버지도 때로는 세 살 먹은 손자에게 배운다는 말이 있다. 반면 할아버지 하는 말이 말 같지 않으면 손자도 듣지 안는다. 말 같지 않은 말 듣지 않는다고 잘 못됐다고 할 수 없다. 할아버지가 말 같지 않은 말 했다면 오히려 반성해야 한다.

21세기 요즘 어쩌다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두고 다투는지? 그런 몰지각 몰상식이 범람한 사회가 됐는지? 안타깝다. 그것도 소위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며 일하는 위정자들 사이에서 공식, 비공식 자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그런 모습 보이니,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언론사 사진기자가, 방송사 마이크가, 가까이 가면 몰지각 몰상식한 짓 그것도 추태와 다를 바 없는 짓 하는 꼴이란 가관이다. 그런 사람을 그런 중요한 자리에 있도록 한 그 책임 첫째는 국민에게 있고 다음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

인간이 남 부끄러운 줄 모르면 몸에 실올 하나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광화문 네거리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춤은 못 추나? 인간이기에, 남부끄러운 줄 아는 인간이라는 탈을 썼기에, 그 짓 못하는 것, 그 짓이 삶의 순리가 아니라서 하지 않는 것, 바보 천치가 아닌 보통 인간이라서 하지 않는다.

그렇게 몰지각 몰상식한 언행을 하는 짓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좋아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가 정상적인 사람들이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몰지각 몰상식은 자신에게 욕을, 고통을, 더 나아가 불행을 자초한다. 혹시 뛰기 위해서라면 더욱 잘 못 됐다. 위정자들 자기를 널리 알리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뛰는 언행을 하는 것 어쩌면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하지만 몰상식 몰지각 그런 방법은 아니함만 못하다.

인간은 행·불행을 놓고 행복 아닌 불행을 선호하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아는 본시 행복을 원하고 고통이란 바라지 않는다. 그 바람은 타당한 것이며 참되고 온당한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을 얻고 고통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고통을 없애려면 고통의 원인과 조건을 없앨 필요가 있고 행복을 얻으려면 행복의 원인과 조건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행복을 얻으려는 것 그런 마음이 있다면 몰지각한 몰상식한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

몰지각한 몰상식한 짓 하는 것 똑똑하고 잘 난 것 아니다. 가장 못난 짓이다. 본시 인간의 마음은 천정한 본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 마음이 삶을 통해 이기적인 심리작용으로 더러운 때가 묻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고 살기 위해서는 그런 마음의 때가 본시 타고난 선을 통해 정화돼야 한다. 그런 몰지각 몰상식에 대한 때를 없애는 것, 멈춤을 넘어서야 한다.

위정자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그리고 정직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 몰상식한 몰지각한 위정자가 다수 아닌 소수인 점이 다행이다.

문제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물 모두를 흐리게 한다는 점이다. 깨끗한 우물물을 위해서는 그 우물을 먹는 사람들 모두가 우물에 있는 미꾸라지를 잡아 없애야 한다.

마찬가지로 위정자 모두를 위해 몰지각 몰상식한 언행을 보여 국민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그런 위정자 그런 잘 못된 사고를 갖고 몰상식, 몰지각한 언행 함부로 하는 위정자를 바로잡는 것, 동료 위정자들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 퇴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위정자 모두에게 축복이 간다. 몰지각 몰상식 어떤 경우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미래의 모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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