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건너지 못한 개 한 마리 상사화 그늘에 쪼그려 앉아 다 건너지 못한
비명을 보고 있다

굽거나 휘지 않는 속도는 혀의 공포를 늘어뜨린다

직선 도로에서 흘러간
곡진한 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터널에서
어둠 한 입 베어 문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혼자 서성거리던 몸이
붉은 소리로
휜다


<감상> 직선 도로에서 속도는 절대로 굽거나 휘지 않는다. 도로가 거대한 육식동물이 되어 혀의 공포를 길게 늘어뜨린다. 길을 건너는 온갖 동물을 베어 물고, 하늘 나는 새들의 날개마저 낚아챈다. 도로는 속도의 욕망을 부추기고, 순수한 자연의 길을 끊어낸다. 옆구리에 구멍이 뚫렸으므로 산은 비명을 내지른다. 오늘도 도로에는 붉은 소리로 휜 동물들이 털을 휘날리며 말라가고 있다. 이들의 사체에 구름이불이라도 덮어주는 이는 있을까. 자연의 길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만이 생명체를 치유하고 공존할 수 있는 첩경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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