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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포럼] 포항 토박이들 "아호·학산 가니더, 아구에서 노니더"
[경북포럼] 포항 토박이들 "아호·학산 가니더, 아구에서 노니더"
  • 안수경 포항지역위원회 위원.포항문화원 사무국장
  • 승인 2020년 07월 08일 16시 57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7월 09일 목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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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경 포항지역위원회 위원.포항문화원 사무국장

뇌리에 박힌 아호(阿湖) 지명의 첫 기억은 ‘북부해수욕장 명칭 변경’을 위한 토론장에서였다. 지금은 포항 축제 장소로 명소가 된 영일대해수욕장의 본래 이름은 북부해수욕장, 말 그대로 포항 북쪽에 있는 해수욕장을 지칭할 따름이다. 지역 고유의 특성은 보이지 않고 방위만을 나타내기에 오래전부터 명칭에 대한 논란이 있어 오던 터였다. 토론장은 다양한 의견을 지닌 원로들과 관심 있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드디어 양론( 兩論 )으로 나누어졌다.

‘영일대해수욕장’과 ‘ 아호해수욕장’. 각기 명분은 분명했다. 전자는 영일만(迎日灣)에 포함되어 있고 영일대 해상누각이 지어졌으니 해운대나 경포대처럼 명칭을 변경하여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관광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후자는 지금은 퇴색되었지만 포항제철소가 들어 서기 전까지 전설의 명소인 ‘송도해수욕장’과 만(灣) 곳곳에 여러 해수욕장이 즐비하기에 고유지명인 ‘아호(阿湖)’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론은 영일대해수욕장 승리, 아울러 영일만 전체를 발전시키자는 결의 찬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새로 얻어진 이름 영일대해수욕장은 인지도(認知度)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도심 속 호수처럼 에둘러진 아름다운 영일만 바다. 햇살 가득 담은 은빛 백사장에 고개를 들면 쪽빛 세상. 하늘 닿기 전 마주 보이는 안대( 案對 ) 호미곶까지 흡사 내 몸은 짙푸른 아드리아해에 잠긴 카프리 앞에 서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환골탈태... 지금 영일대는 파란 바탕에 피어오른 핑크빛 항연 속에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거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아호( 阿湖 )는 또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지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닐 텐데 왜 포항사람들은 아호라는 지명을 잊지 못할까? 가슴 속에 꼭꼭 숨겨 둔 옛 애인처럼.

그 첫 번째 이유는 아(阿) 자(字)의 친숙함일지도 모른다. 영일만은 만(灣)의 개념이 확립되기 전 여러 이름을 품고 있었다. 아등변·어룡사·어링불·용담 등등. 이 중에서 처음 문헌에 보이는 이름은 아등변(阿等邊)이다. 아등변과 아호의 아(阿)는 같은 한자이다. 아등변의 시작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신라의 국가제례인 사해제(四海祭)와 사독제(四瀆祭)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사해제 중 동쪽 제례가 근오지현(近烏支縣) 아등변에서 거행된 것이다. 근오지는 영일의 땅이요. 아등변은 신라 아달라이사금 시절 연오랑과 세오녀가 천제(天祭)를 지낸 일월지와 도구리 앞바다이니 이 속에 포항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917년 조선총독부 제작 지도에 보이는 희망봉과 천구동 일대..

두 번째는 조선후기 흥해군 동상면(東上面)에 포함되어 물길 많은 포항이 바다를 만나 호수를 이룬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1917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도를 보면 아호 주변 지형들에 이름이 보인다. 영일산 희망봉 등. 이렇듯 그냥저냥 해안가에 펼쳐진 산과 언덕, 작고 큰 내(川)들이 바다와 맞닿으며 풀어놓은 경관이 표현되어 언덕 아(阿 ), 호수 호(湖), 아호(阿湖)가 된 것이 아닐까? 또한 영일만의 북쪽 해안선이 삼호(三湖)를 시작으로 흥해 청하로 이어지니 그 출발은 아호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아호동은 천구동(川口洞)으로 바뀌었다. 포항면이 급성장하고 칠성천, 학산천, 창포천들이 영일만 하구( 河口 )로 모여드니 지형을 따라 자연스레 만들어진 동네 이름이다. 1949년 마침내 포항이 읍(邑)에서 시(市)로 승격되었다. 천구동 앞바다는 만선어람(滿船魚籃)에 번화가가 형성되며 항구동(港口洞)으로 개명한다. 아호동→천구동→항구동, 흐르는 시간에 아호동 터에 불려 진 이름이다.

2019년은 포항이 시로 승격된 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환동해 중심도시’ ‘시승격 70년’ 등 시내 곳곳에는 일 년 내내 축하 행사들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여기에 수식어를 하나 덧붙이면 ‘경북 제일의 도시 포항’일 것이다. 그러나 동해안 대표 도시 포항이 처음부터 사람 살기 좋은 길지 (吉地)는 아니었다. 척박하기 그지없어 “사람이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벽지어촌 오지(奧地)였다. 포항리→포항동→포항면→포항읍→포항시, 포항이 거친 행정구역 이름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차츰차츰 땅덩이와 성장 규모를 확장시켰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확장과 성장 뒤에는 지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제는 흔적조차 찾기 힘겨워진 아쉬움이 배어난다.

그 아쉬움의 그늘에 아호(阿湖)는 오늘도 숨 쉬고 있지 않을까? 토박이들이 뛰어놀았던 은빛 청어 떼 해안가, 아구(阿口)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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