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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단] 물병
[아침시단] 물병
  • 이병일
  • 승인 2020년 07월 09일 15시 5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7월 10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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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술사는 말의 피로 구름과 이야기하고
왕버들나무와 돌과 들판을 가리켜 물병이라 했다

금개구리 목울대 하부엔 강이 있다고 했다
말의 눈엔 지상을 여행하는 빗소리가 고인다고 했다

풀로 자란 천둥 밑엔 꽃과 뱀도 제 발등을 찧어 놓고
물결무늬 접은 수달의 집을 가리켜 물병이라고 했다

입술을 가진 것들이 촉으로 녹아 흐르면
물병의 물을 따를 입구가 보인다고 했다

<감상> 농경시대는 자연물에 깃든 정령(精靈)을 볼 수 있기에 인간들은 사물들과 이야기가 통하였다. 점술사는 말(馬)의 피로 점을 쳐 구름과 이야기하고 비가 올 것을 예견했다. 물이 흘러가는 강물은 말의 눈에, 금개구리의 목울대에, 사람들의 눈동자에 고인다. 흐르는 물은 모든 생명체에 고여 있기에 지구는 거대한 물병이 된다. 다른 행성에 아직도 물결무늬가 남아 있는 건 물병이 존재했다는 증거이다. 생명의 촉수를 가진 것들은 물병의 입구가 잘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명의 이기(利器)에 가려 내리는 빗물은 보되, 땅 밑의 천둥과 물의 원천은 볼 수가 없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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