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환 변호사
금태환 변호사

#1 이름도 생소한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카페 노천의자에 앉아 오고 가는 학생들을 구경한다. 학생들은 재잘거리고 바람은 솔솔 불어온다. 시간이 지나가도 지루한 줄 모른다. 문득 이것이 여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쁘고 힘든 일들이 저만치 떨어져 있다. 한국에서의 지난 일들이 까마득하다. 미국 대학에 있을 때 일이다.

#2 절에 고시 준비생 둘이 있었다. 하나는 아침형, 하나는 저녁형이었다. 시험날짜가 임박해 가자 저녁까지 늦게 공부하는 친구가 시험에 될 것 같고 자기는 공부를 덜하는 듯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같이 먹지 않는 것도 신경 쓰이고 태도도 거만해 보이고 모든 게 불안해지게 되었다. 절을 나와 서울로 돌아왔으나 절에 있는 친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공부한다고 허겁지겁했으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해 둘 다 낙방하였다. 필자가 고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여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준비된 여유, 준비 중의 여유가 그것이다. 전자는 힘들게 일한 후의 여유이고 저절로 오는 여유이며, 후자는 힘든 일을 하면서의 여유이고, 의도적인 여유이다.

우리는 크건 작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조그마한 성과라도 이룩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 여유는 성과급으로 받는 것이다. 바삐 사는 사람에게 주위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라고 충고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들은 그렇게 한 후에 여유를 가지려 하기 때문에 그러한 말이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태도도 틀리지 않는다. 여유에 여유를 거듭한다고 해서 나중 진정한 여유가 생기겠는가. 역설적으로 여유란 고된 노동 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고된 근검절약이 없이 어떻게 나중의 여유가 생기겠는가. 하기 좋은 말로 지독하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목표가 있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것이 전부도 아니다 열심히 하면서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준비 중의 여유이다. 하루 목표, 한달 목표를 정해 열심히 뛰어가지만 하루에도 가끔씩 한달에도 여러번 휴식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휴식이 여유이다. 가야 하는데 더 멀리 가기 위하여 더 효과적으로 가기 위하여 여유를 가져야 한다. “사람은 때때로 멈출 필요가 있다. 부유물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세바시티안 베텔). 이러한 여유는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도로 인한 먼지들이 휘감아 본체를 보이지 않게 한다. 생각지도 않게 그런 상황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이제 좀 멈추라고 하는 모양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에서 나만이 어떻게 계속 잘 나가고 모든 일을 다할 수가 있을까. 실패할 수 있는 여유, 실패의 여유이다. “성공이란 실패와 실패 사이를 열정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이동하는 것이다”.(윈스톤 처칠) 실패란 징검다리가 없으면 성공이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신줄을 놓지 않는 것뿐이다.

며칠 전 우리는 서울시장의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요즈음 그런 일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소식을 듣는 순간 다시 한번 머리가 띵하여 왔다. 그것도 어찌 보면 여유 없음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자신의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맹렬히 달려오다가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을 넘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앞에 나타난 부유물을 천천히 가라앉히거나 잠시 멈출 수는 없었을까.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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