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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의 인문명리]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의 100년
[류동학의 인문명리]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의 100년
  •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 승인 2020년 07월 13일 18시 02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7월 14일 화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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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전쟁영웅은 있었다. 삼국시대는 고구려의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안시성전투의 양만춘, 삼국통일의 김유신 등이 인구에 회자되는 전쟁영웅들이다. 고려시대는 외침이 많아 전쟁영웅들이 많았다. 거란족을 물리친 귀주대첩의 강감찬, 여진족 격퇴의 윤관장군과 척준경, 몽고 격퇴의 김윤후, 홍건적과 왜구 격퇴의 최영과 이성계라는 걸출한 전쟁영웅이 그들이다. 특히 이성계는 전쟁영웅에서 조선을 창업하는 창업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전쟁영웅으로 국민들이 추앙하는 인물은 절체절명의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다.

1950년의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남침으로 40일도 안 되어 마산, 칠곡, 포항방어선으로 남한땅의 90%가 북한군의 수중에 넘어갔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전세를 역전시킨 전투가 칠곡의 다부동전투와 인천상륙작전이다. 디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선엽 장군이 영면에 들었다. 마침 진보진영의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살로 생을 마감하여 공과(功過)가 뚜렷한 고 백선엽과 박원순의 조문논쟁으로 보수와 진보의 갈라치기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백선엽 장군(1920~2020)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일제의 문화통치기인 1920년 11월 23일(음력 10월 13일) 평남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에서 아버지 백윤상(白潤相)과 어머니 방효열(方孝熱)의 2남 1녀(복엽·선엽·인엽)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시주(추정) 일주 월주 년주  
무토(戊土)정재 ①을목(乙木)일간 정화(丁火)식신 경금(庚金)정관 천간 
인목(寅木)겁재 ③유금(酉金)편관 ②해수(亥水)정인격 신금(申金)정관 지지
    ㉮무갑임(戊甲壬,갑목사령)   지장간

겨울 초입인 ②해수(亥水·돼지)월의 ①을목(乙木)일간으로 태어났다. 해수는 겨울의 방위인 해자축(亥子丑)의 시작처이자 해묘미(亥卯未) 삼합목국(三合木局)의 장생(長生)이다. 해수의 물상(物象)은 움직임을 주관하는 역마의 상으로 연못, 바다, 생활용수, 농업용수, 강, 호수, 해외 등을 나타내고, 술토와 더불어 술해천문성(戌亥天文星)과 천라(天羅·하늘의 그물)를 나타내니, 직감 등이 발달하거나 정신, 철학, 종교, 신비 사상 등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하여 먹과 붓, 연구, 계발, 수학, 계산 등을 표시하기도 한다.

해수(亥水·돼지)는 음이나 양의 수인 임수(壬水)라는 큰 저수지를 감추고 있다. 그러므로 양수가 음의 ①을목(乙木)을 생하니 정인(正印)이라는 십성(十星·육친·십신)용어를 붙인다. 정인은 어머니, 스승, 명예, 학문, 지혜, 권력, 주택, 교육, 내향적 성향으로 전통계승의식이 강하다.

백선엽은 1926년 병인년(丙寅年·7살)에 부친을 여의고, 어렵게 평양사범학교에 진학하여 잠시 교사생활을 하게 된다. 그후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입학하여 1941년 12월 30일 제9기로 졸업하고 1943년 2월 간도특설대에 소속되어 2년 6개월간 근무한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 북부에 있던 사회주의 계열 민족 해방세력인 팔로군,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대를 토벌하기 위한 특수 목적을 띈 북방 공산 게릴라 토벌 부대로 1938년 12월 창설되었다. 24세부터 26세까지의 청년 백선엽의 간도특설대의 활동 기간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는 부분이다.

그가 교육자에서 군인으로 직업이 바뀐 역학적 이유는 일지의 ③유금(酉金)편관(偏官)의 영향이다. 편관은 주로 살직으로는 군인, 검찰, 경찰, 수사관, 정치, 감찰 등의 직업군을 형성하는데 특히 일지의 편관은 취사선택궁으로 본다. 정인격의 그의 사주에서 정관과 편관 등의 관살(官殺)이 강한사주이다. 그는 관복이 타고난 사주임을 알 수가 있다. 그는 해방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국방경비대 중위로 임관한다. 그는 육본 정보국장시절 여순 14연대 반란사건(1948년 10월)이후 공산 게릴라 소탕 및 숙군 사업을 지휘하던 시절 남로당 총책으로 사형을 구형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구명하였다. 그의 관운은 1950년 31세에 준장, 1951년 소장, 1952년 중장, 1953년 34세에 대한민국 최초의 대장으로 승진하게 된다. 1952년 겨우 33세의 나이에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고 1960년 41세에 전역한다. 박정희 정부에서 교통부장관을 역임한다.

그의 전과의 백미는 1950년 8월에 있은 칠곡의 다부동전투로, 그는 1사단장으로 그는 후퇴하는 한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하였다. 그는 다부동전투에서 승리하여 백척간두의 조국을 구하고, 10월 처음으로 평양을 탈환한다.

좌우 정치적 혼란이 심한 한국보다 오히려 군인의 명예를 존중하는 역사전통을 지닌 미국이 백 장군에 대해서는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로 부르며 극진히 예우해 왔다. 2013년에는 미8군 명예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2016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8군 사령관 이·취임식에 초대되었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을 관통한 100년이라는 긴 그의 삶은 공과가 너무나 뚜렷하다. 그러나 백척간두의 대한민국을 구한 그의 전쟁영웅의 면모는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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