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감상> 오만과 탐욕이 넘치는 세상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오히려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며 죄 짓는 자들이 무수한 세상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살아보면 어떨까. 유성처럼 스쳐가는 인연도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니! 너를 사랑하고 행복하였으나 “너, 당신, 그대”처럼 분리될 수밖에 없는 허약한 관계가 아닌가. 하염없이 죽음이 반복되는 세상에서 죽음으로 자신을 알리려고 하지 말라.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인가. 살아 있다는 것도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으므로, 죽음은 구더기를 불러들이는 살점일 뿐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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