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동 고분군, '월성서고분군' 규정…신라왕실의 새로운 능역으로 자리매김 충분"
"서방에 극락정토 존재 믿음으로 무열왕릉 등 신라 왕릉 이끌고 여러 사찰 창건돼"

2020 경북문화포럼 ‘신령스런 선도산에서 신라 영웅들의 꿈을 보듬다’가 16일 오후 The-K호텔에서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이 기념퐐영을 하고 있다. 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서악동 고분군은 시내를 벗어나 월성 서쪽에 새롭게 조성된 능역으로, 주변 일대의 고분군과 함께 ‘월성서고분군’이란 개념으로 규정지을 필요가 있다”

“선도산(서악)은 원래 산악숭배로 매우 중시된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진평왕대에 이르러 불사가 크게 이뤄지면서 차츰 불교의 성지로 바뀌었다”

16일 경주 The-K호텔에서 ‘신령스런 선도산에서 신라 영웅들의 꿈을 보듬다’란 주제로 열린 ‘2020경북문화포럼’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4시간 동안 이어진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쏟아 냈다.

특히 이날 포럼 참석자들은 예부터 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서악’으로 중요시돼 온 선도산의 수많은 유적과 전설, 그리고 다양한 고분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직접 역사적 의미와 가치 등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먼저 ‘선도산과 서악고분군’이란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서악고분군은 중앙부에 상당히 정연하게 그룹을 이루면서 조영된 점, 그와 관련된 믿을 만한 내용이 기록상 처음 나나타는 점,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존하는 능비로 주인공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무덤이 존재하는 점 등으로 수많은 신라묘역 가운데 가장 의도적인 기획 아래 조영됐음을 보여주는 실례다”면서 “이를 매개로 나란하게 조영된 4기 고총의 주인공은 중고기의 국왕들임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또한 “선도산은 원래 산악숭배로 매우 중시된 대상이었지만, 선도산 봉우리에 조금 못 미치는 바로 아래 지점에 아미타불 3존이 자리를 잡는 등 일대에 사찰이 자리를 잡으면서 어느 틈엔가 선도산이 신라인들에게 불교의 성지로 바뀌면서 서방정토로 인식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일대가 묘역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일대의 묘역확보 용이함 등 여러모로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였기 때문에 선정됐을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그러다가 불교가 차츰 주류를 차지하면서 서악은 자연스레 서방의 불국정토처럼 인식돼 오래도록 영원한 신성 공간으로 뿌리내려진 것”이라 강조했다.

이어 진행된 세션1에서 차순철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은 ‘선도산의 고분’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선도산 일대에 위치한 고분군에 대한 검토 결과, 이 지역은 당시 ‘서원’으로 불렸던 곳으로 경주 월성북고분군의 조성이 포화상태에 이르던 시점에 새롭게 월성 서쪽에 능역으로 조성된 곳이다”면서 “월성 서쪽에 새로이 능역을 만든 이유는 자연지형을 이용해 능선상에 거대한 봉분을 조성함으로써 평지에 조성된 적석목곽분에 못지않은 외형적인 규모를 보여주면서, 왕권의 계승자로서의 부계 관계를 표출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또한 차 단장은 “선도산 일대 고분군은 삼국시대 적석목곽묘를 중심으로 시내에 조성된 ‘월성북고분군’의 뒤를 이어서 신라왕실의 새로운 능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으로 그 성격을 반영해 ‘월성서고분군’으로 규정할 수 있다”며 “그리고 이후 신라왕릉이 입지가 개별 능역으로 분화되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으로 볼 때, 신라묘제 안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라왕경의 서쪽 나성, 서형산성’을 주제로 발표한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은 “신라 왕경 서쪽에는 ‘서형산 · 선도산’이라는 산이 있고, 이 산의 팔부능선에 왕경 서쪽을 방어하였던 나성 역할의 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이 ‘선도산성 · 서형산성 · 서악성’이라 호칭되고 있다”면서 “서형산성은 서악동마애불이 조성된 7세기 중후반 이전에는 왕경 서쪽을 방어하는 나성으로서 존재했지만, 이후부터는 국방적인 나성 역할 대신에 ‘호국의 성소’로서의 기능이 강조됐으며 도교의 선도성모와 관련해 선도산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세션2에서는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한정호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선도산의 불교유적’이란 주제로 발표를 이어 갔다.

한 교수는 “6세기 신라 불교의 유입은 형산강 서천의 서편에 자리 잡은 선도산 일대가 신라 역사의 중심으로 부각되는 전환점이 됐다”며 “서방에 극락정토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법흥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 무열왕릉 등 신라의 왕릉을 선도산으로 이끌었고 여러 사찰도 창건됐다”고 했다.

또한 한 교수는 “그러나 서천 서편의 지질은 이암과 안산암층으로 구성돼 건축이나 조형물에 필요한 화강암을 강 건너편에서 운반해야 하는 수고가 뒤따랐다”면서 “이러한 자연적 한계를 고려하면 선도산 일대에 남아 있는 화강암으로 제작된 유물이 갖는 의미는 다르게 평가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발표에 나선 조철제 경주문화원장은 ‘경주 선도산의 유교문화-서악서원 편액 중심으로’란 주제발표를 통해 “서악서원은 1592년 경주부윤 구암 이정의 청에 의해 퇴계가 서악 즉 선도산아래 서원이 세워졌기 때문에 서악정사라 이름을 지어 보냈다”면서 “퇴계가 정사 이름을 지으면서 선도정사라 하지 않은 것은 그 신이(도가적 의미)한 뜻이 있기 때문에 서악정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기조강연과 주제발표를 마친 후 주보돈 교수를 좌장으로 4명의 주제발표자와 진병길 신라문화원장, 이동욱 경북일보 논설실장 등 총 7명의 패널이 ‘신라 선도산의 역사적 의미와 보존활용 방안’을 주제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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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환 기자
황기환 기자 hgeeh@kyongbuk.com

동남부권 본부장, 경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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