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술재연방집. 이동진 전 문경향교 전교 제공.
문경에서 선비로 살다 돌아가신 부자(父子)의 유고집(遺稿集)이 16일 번역 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문경향교 전교를 지낸 이동진(75) 씨는 할아버지 영파(潁坡) 이석영(1875~1951) 선생의 ‘영파유고(潁坡遺稿) 1,2,3권’과 아버지 동산(東山) 이봉원(1900~1983) 선생의 ‘동산유고(東山遺稿)’를 번역해 ‘소술재연방집(紹述齋聯芳集)’ 한 권으로 묶어 펴낸 것이다.

소술재(紹述齋)는 이동진 씨의 당호(堂號)로 선조들의 뜻과 문한(文翰)을 이어 짓는 집이라는 뜻이고, 연방집(聯芳集)은 이동진 씨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의 문집을 같이 엮었다는 뜻이다.

이 문집은 1875년부터 1983년까지 100년 이상 2대에 걸친 부자 선비들의 시문을 통해 문경지역 근·현대 선비들의 교유 상황과 인물들의 면면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이 책은 영파유고와 동산유고 두 권이 들어 있으며, 1978년 발간한 영파유고에는 한시 282편, 서(書) 20편, 기(記) 1편, 찬(贊) 1편, 상량문 1편, 제문(祭文) 25편, 만사(輓詞) 7편 등 337편과 류현우 선생의 서문, 동산 이봉원 선생의 가장(家狀), 전윤석 선생의 행장(行狀), 이원영 선생의 묘갈명(墓碣銘), 채영석 선생의 발문(跋文)이 실렸다.

또 1999년에 발간한 동산유고에는 시 294편, 만사 29편, 서(書) 20편, 제문 33편, 묘갈명 6편, 서기발(序記跋) 7편과 책을 엮은 이동진 씨의 가장(家狀), 이창섭 선생의 행장과 묘갈명, 이덕원 씨와 권태석 씨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이동진 전 문경향교 전교 제공.
그중 저자들이 살았던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에 팔경(八景)을 각각 설정하고, 이를 읊은 시가 눈길을 끈다.

영파 선생의 팔경은 작약부운(芍藥浮雲), 옥봉조양(玉峯朝陽), 마산낙조(馬山落照), 묵방부연(墨坊釜淵), 모봉제월(帽峰霽月), 마애폭포(馬崖瀑布), 수산노송(壽山老松), 전로행인(前路行人)이며, 동산 선생의 팔경은 서강명월(西江明月), 장정수류(長汀垂柳), 묵방부연(墨坊富衍), 동산반조(東山返照), 약수귀운(藥岫歸雲), 탄동초적(炭洞樵笛), 이포모연(裡浦暮煙), 옥봉조양(玉峯朝陽) 등이다.

두 선생은 진성 이 씨로 일제강점기를 맞아 출사(出仕)의 꿈을 접고, 이 마을에서 공부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선비로 살았다.

이동진 전 문경향교 전교 제공.
이 책을 펴낸 이동진 씨는 “수십 년 전 한문으로 펴낸 할아버지, 아버지의 유고집이 한문으로 돼 있어 읽을 수 없는 형편이라 답답했는데, 전 성주향교 강희대 전교를 만나 번역본을 내게 됐다”며, “당시를 살아온 우리 선조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시인으로서 어떤 시상을 가졌던가를 다소나마 짐작할 수 있어 후대에게 할 일을 한 것 같아 눈이 밝아진다”고 말했다.

황진호 기자
황진호 기자 hjh@kyongbuk.com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