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 어울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어울림을 의미하는 합(合)이 옳지 않은,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는 예가 더러 있다. 야합과 담합이다.

야합(野合)이란 들판에서 합쳐지다, 비정상적으로 결합하다, 예에 맞지 않게 결합하다의 의미다.

원래는 남녀 간의 합당치 못한 결합을 의미했는데, 오늘날에는 눈앞의 이익이나 좋지 못한 목적을 위해 서로 어울리거나 결합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야합(野合)이란 원래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공자(孔子)의 아버지 숙량흘이 같은 동네에 사는 안징재라는 처녀를 사모했다. 무려 50세나 차이 나는 두 사람이 연정을 품고 만났다. 동네에 나쁜 소문이 돌자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멀리 들판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고, 들판에서 사랑을 나눈 결과 공자가 태어났다.

후세 사람들이 들에 나가 두 사람이 합(사랑 나눔)쳤다고 하여 야합(野合)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불순하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정치권에서 등장하는 야합이라는 말은 두 단체 간, 혹은 사람 사이에 순수하지 못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서로 어울리고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순한 어울림이기에 밀실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므로 ‘밀실 야합’이라고도 한다.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 공자. 유교의 시조로서 어머니가 아들을 얻기 위해 니구산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예(禮)에 뛰어났으며, 천하를 주유하며 인(仁)에 기초한 정치를 펼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유가 경전을 정리 편찬하는 일에 전념했다. 제자 양성에도 힘써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내었으며, 불멸의 사상가이자 교육자가 되었다.

비록 사랑이 야합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정성과 간절한 기도가 있었고, 공자 본인의 성실한 노력으로 성인이 된 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이다.

야합이라도 좋은 결실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야합이란 말 자체는 온당치 못한 것으로 쓰이고 있다.

담합(談合)이란 남들이 모르게 자기들끼리 짜고 약속하는 것이다.

원래 담합(짬짜미)는 동종의 기업들이 이윤을 보다 증대시키기 위해 합의하여 경쟁을 제한하고 가격이나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을 뜻한다.

국제 원유가의 하락에도 국내 정유사들이 휘발유 가격을 계속 비싸게 유지해 온 것이나, 교복 회사들이 교복 가격을 비싸게 형성시킨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각 분야의 실질적인 경쟁을 제한하는 담합은 가격제한, 판매제한, 생산 및 출고제한, 상품종류제한 등으로 소비자에게 일방적인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공정거래법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담합으로 부당 이익을 추구하는 일들과 정치적인 담합으로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일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합(合)이 끼리끼리가 아니고 모두를 위한 약속이어야 하고, 바른 자리에서의 합이라야 한다. 아름다운 약속과 만남이라야 우리의 삶도 아름다워진다.

야합, 담합과 함께 우리말에 ‘게정스럽다’는 말은 불평스러운 말과 행동을 일부러 나타내다. ‘영절스럽다’는 아주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실천하지 않는다. ‘부집’은 약을 올려서 말다툼을 함. ‘막서다’는 서로 싸울 듯 마구 대들다. 이런 말들이 있다.

딱 정치판을 두고 만든 말 같다. ‘협치’라는 말이 좋은 줄 알면서 장애물 없는 장애물 경기를 하겠다는 여(與)에, 장애물 하나라도 옳은 것 설치하고 보자고 몽니를 부리는 야(野)나 모두 볼썽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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