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박원순 전 서울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의 전말이 어디까지 드러날지 알 수 없으나, 피해자의 호소와 박 전 시장의 극단적 판단으로 보아 권력과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있었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피해자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무엇보다 박 전 시장 본인의 과오가 크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이나 위선의 문제로 보고 지나칠 일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시민활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그의 마지막과 그 이후 일어나는 여러 가지 소란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 사고가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피해자를 향한 다양한 2차 가해를 들 수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향에 따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왜 몇 년이 지난 후에 신고를 했느냐고 묻거나 ‘피해 호소인’ 운운하는 것은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둔감함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공무원조차 업무와 무관한 상사의 부적절한 언행에 도전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고, 특히 여성 하급자의 입장이 어떠했을 것인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은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의도적이고 습관적인 공감 거부 증상이다.

여비서를 고용하지 않는 것을 성폭력 예방의 해법이라 제시한 어떤 지방자치장의 발언은 남성 중심적 사고의 또 다른 사례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니 여성을 자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정한 기회를 박탈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여성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상응하는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장 중 여성은 4% 미만이고,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의 수는 20%가 되지 않는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지만, 정교수 중 80%는 남성이다. 이런 압도적인 위계의 차이는 그 자체로 남성 중심 문화의 결과이면서 또 다른 원인이 된다. 자신의 성폭력이 두려워 여성을 비서 자리에서 내몰겠다는 사람의 경우, 차라리 그 자리를 그 여성에게 내놓는 것이 더 나은 문제 해결 방안이 될 것이다.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안타까운 실수’로 축소하려 하거나 ‘드디어 드러난 파렴치한 행적’으로 한껏 부풀리려는 정치적 구설들도 이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같은 세대의 사람들 중 누구보다도 여성 인권과 성폭력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인데도 남성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머리로 이해한 평등 존중의 가치, 입으로 선언하는 페미니스트의 정체성, 개인에 대한 준엄한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문화와 인식의 변화가 궁극적인 해결책이겠으나, 문제는 시간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 구축된 남성중심의 사고와 문화는 사회 구성원의 뼈와 살에 섞여 있어 어떤 이론과 지식으로 쉽사리 벗겨낼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일과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남녀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불미스런 행동을 엄중히 제약하는 제도적 장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축적된 차별과 폭력의 경향성이 우리 안에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력한 방안들을 수용할 수 있다. 모든 분야의 고용과 인사에서 여성 비율 할당제를 폭넓게 시행하고 여성이 사회적 성공을 막는 요소들을 확실하게 제거해야 한다. 성폭력 방지를 위한 행동지침과 피해자 보호 체계가 이번 서울시의 경우처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모든 관련자에게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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