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마침표, 어머니 마침표, 내가 부르는 대로 엄마
는 방바닥에 엎드려 글씨를 쓴다. 연필을 쥔 검지가 작은
산 같다. 나는 받침 없는 글자만 불렀다. 공책 뒷장에 눌
러쓴 자국이 점자처럼 새겨졌다.

여름밤의 어둠은
빛을 밀어낸 지우개 가루
연필 끝을 깨물었을 때
연필심의 이상한 맛을 혀로 느끼듯이
엄마는 자기 이름을 쓰고는 천천히 지워버렸다.


<감상> 어머니는 이름을 쓸 줄 몰랐기에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을 한 푼도 지니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거나 겨우 졸업한 어머니, 발음대로 받아써서 받침이 맞지 않고, 비뚤하게 쓴 글자가 산의 능선 같았다. 그래서 나는 늘 받침 없는 글자만 불렀다. 엄마는 글자를 쓸 줄 모르는 부끄러움에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글자는 사라지고 꾹꾹 눌러선 자국이 점자(點字)로 남아 있다. 낮에는 하늘에 그어진 비행운 같고, 밤에는 은하수처럼 지우개 가루가 남아 반짝인다. 연필심을 혀에 묻혀 쓰느라 시커멓고, 자기 이름은 흐릿해져 갔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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