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약 20여 년 전의 기억을 되살린다. 명덕네거리에서 계명대학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맛집 식당이 있었다. 한정식을 주메뉴로 하는 일반적인 음식점이었다. 이 식당의 입구 계산대 옆 벽면에는 흑백사진으로 제작된 특별한 달력이 몇 년간 걸려있었다. 자주 가다 보니 식당주인과도 자연스레 면을 트게 되었다. 당시 오십대 후반의 주인장은 목소리가 털털하고 눈 모양이 유난히 큰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필자는 식당의 흑백 달력에 대하여 물었다. “저 벽면에 붙어 있는 달력에 나오는 흑백사진의 작품은 현장 사실력이 뛰어나네요. 잎사귀 없는 애처롭고 앙상한 나목위에 매어 달린 까까머리 아이들의 표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사진을 찍은 작가가 구왕삼(1909~1977)이라고 되어 있네요. 수준이 높고 매우 인상적입니다.” 주인장 왈 “…음 구왕삼 사진가를 아세요? 우리 아버지의 사진 작품입니다.” 이어서 “아버지는 항상 카메라를 매고 현장의 상황을 담았는데 아마 한국에서는 초창기 사진계 멤버로 요사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네요.”라고 했다.

달력 그림에 나타난 흑백사진 6장을 보니, 이만한 사진작가가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러한 계기로 구왕삼 사진작가의 맏아들인 식당주인과 더 친하게 되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식당은 없어지게 되었고 사진작가 구왕삼에 대한 기억도 희미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가끔씩 대구의 초기 사진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왕삼과 최계복이 거론 되었다.

구왕삼의 사진작업. 군동.1945년작

구왕삼은 1909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집안의 영향으로 청년시절에 찬송가 편집위원을 지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사진을 시작하였다. 1945년 전국사진문화연맹 사진전에 특선에 당선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1947년 5월 27일 자 지역신문에 실린 ‘대구사진계를 논함’에서는 일본의 사진풍에 기대어 무분별하게 변모한 일제 잔재를 비판하였다. 조선 여인들의 풍속미를 악용시킨 사례를 들고 있다. 그는 “사진은 무성(無聲)의 시(詩), 시(詩)는 유성(有聲)의 사진”이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은 다양한 예술 전반에 관심을 보이며 동요작곡, 찬송가 편집, 음악평론, 사진작업과 비평 등 예술 전반에 걸친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의 본격적인 사진계에 대한 평론을 보면 미술의 영역이었던 19세기의 사실주의 텍스트를 사진에 도입해야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살롱사진에 대한 비판과 함께 리얼리즘 사진의 현대적 재해석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추구한 사진예술의 작업관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진리 속에 자연과 인간들의 상황과 표정으로 일상 속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연출된 인형 같은 외형미가 아니라 진실하고 생동하는 모습으로의 작업을 추구하였다. 피상적 현실의 복사가 아닌 역사성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묘사하고 시간과 공간의 현실을 직시하는 한국적 리얼리즘을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0월에 영월군에 위치한 동강사진박물관에서 구왕삼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이 개최되었다. 사후 상대적으로 자료정리와 평가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잊혀진 사진가에 대한 재조명 전시였다. 그것은 대구경북이 근대기 한국사진계의 메카였고 이러한 개척자들이 있었기에 한국의 현대사진예술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지역의 대표 축제인 대구사진비엔날레라는 국제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이번 기회에 한 마디 덧붙인다. 대구사진비엔날레가 평면의 사진 작업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을 융합시켜 새로운 사진예술과 미술 영역의 확장을 시도하여 세계적 국제행사로 나아가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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