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동양EMS 전대길 사장의 글에서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확금자불견인(攫金者不見人)이란 말을 읽고 다시금 의미를 새겨 보았다. 남송 허당 지우 선승의 허당록에 나오는 말이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 명예나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도리를 저버리거나 눈앞의 위험을 보지 않게 되고, 물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의리나 염치를 모른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

또 축록자불견토(逐鹿者不見兎)라는 말도 있다. 사슴을 쫓다 보면 토끼 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큰일을 하다 보면 작은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축록자불견산. 사슴을 쫓더라도 주변 산세를 살피고 절벽이나 위험 요소가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지형을 살펴야 사슴이 도망갈 길을 짐작하고 지름길을 잡아 쉽게 쫓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축지법(縮地法)이다.

정부에서 서울의 집값을 잡는다고 많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정책만이 아니다. 노심초사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애쓰는 빛이 역력히 보인다. 꼭 ‘코로나19’의 확산을 보는 것 같다. 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더 먼저 도망가는 형국이다.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전체 경제의 흐름과 수요자의 심리전반을 파악한 위에 세워진 정책이라야 할 것 같다. 또 힘으로 막 때려잡으면 안 되겠나 하는 생각도 전근대적인 사고다.

공수처 설치 문제도 그렇다. 내일 금방 죽을 사람들처럼 설치는 것 같다. 자신들이 조금 전에 통과시킨 법을 다시 고쳐서라도 설치하겠다고 나대는 것 같다. 어느 장관님은 검찰개혁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 같다. 과감하게 칼을 휘두르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고, 성급하면 명철함을 잃게 마련이다.

어느 도둑이 새벽에 금방의 금을 훔쳤는데 경찰이 “바깥에 사람이 다녔는데 왜 금을 훔쳤느냐”고 물었더니 도둑 왈, 금을 집을 때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이더란다. 도둑뿐이겠는가. 돈독이 오른 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의리나 염치가 대수인가. 앞으로 몇십 년 지속적으로 정권을 잡겠다고 정권에 눈독을 들이면 국민이 안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저 유명한 화가 미켈란젤로가 부잣집 정원사로 일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너무 열심히 정원수를 전정하고 잔디를 깎기에 주인이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물었더니, 잔디와 정원수를 손질하니 아름다워지고 자신의 마음이 즐거워져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대답했단다. 참으로 순수한 열정이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길거리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청소하는 미화원에게 “당신은 무엇이 즐거워 노래를 부르며 거리 청소를 합니까?”하고 물으니 미화원이 “이 길은 우주항공조종사들이 지나가는 길인데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으면 기분이 좋아 성공적으로 우주여행을 할 것입니다. 우주여행을 성공적으로 하는데 내가 일조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했단다.

25년 전쯤 교직에 있을 때 일이다. 교문을 지나면 바로 학교 정원인데 아침 이른 시간에 늘 그 정원에서 휴지를 줍는 한 학생이 있었다. 아직도 이름을 기억한다. 손현옥이란 학생이다. 어떻게 매일 솔선해서 휴지를 줍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학교 시설물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정원이고, 정원이 깨끗해야 자신의 마음도 상쾌해진다는 것이었다. 하도 기특해서 졸업할 때 개인적으로 만년필을 선물로 사준 기억이 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 멧돼지처럼 저돌적이지 말고, 주변을 살펴 배려하고, 돈보다도 먼저 사람을 보는 삶. 산도 보고 사람도 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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